예언과 대언

설교를 준비한다고?

바나바스 2017. 6. 29. 04:38

설교를 준비한다고?

성령의 대언


*사역자들이 말씀자체가 진짜 좋아서 말씀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당신이 사역자인데 말씀이 송이 꿀처럼 달지 않다면 음...^^  좀 문제다.

/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 이것이 좋으니라

/ 송이꿀을 먹으라

/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24:13)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

(물질, , 명예, 학문, 권력, 소유)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19:9,10)

 

또 그 말씀이 입에서만 달아서 계속 맛보고 먹는다면 뱃속에서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뱃속에서 쓰게 느껴진다는 것이고, 만약 쓰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직 그 말씀이 배에는 커녕 가슴까지도 안 내려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로 들어가면 분명히 그것은 그분의 '토로'(吐露 - Exposing)로 변하기 때문이다. 뱃속에서도 그것이 쓴 단계를 넘어서면 즉 소화를 잘 시키면, 진정 그분의 동역자라고, 오른팔 같은 사역자라 할 수 있다.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0:10)

/ 그러니 입에는 송이 꿀보다 달더라도 배에서 쓰지 않으면, 아직 머리에 있는 것이고 뱃속으로는 내려가지도 않은 상태라 볼수 있다. 아직 밑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이다. 계시가 말씀이 육화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10:11)

/ 내 말씀이 다시 너를 통해 밖으로 선포 되어야 (육화 되어야)한다. 설교준비를 위해서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과 같이 비참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비약적이라고 보이는가


그분이 사랑하시는 양에게 주실 꼴은 그분이 역시 사랑하시는(잃어버린 한 마리 양 참조)그 목자와의 사랑과 동행함 가운데 이미 주어졌다

/ 그 이미 주신 그 감동과 말씀을 그분이 마련해 주신 강단에서 그대로 선포하면 된다

/ 그것이 만약 익숙하지 않아 잘 안 되더라도 성령께 그때, 그때마다 컨펌 받고 선포하면 된다

/ 설교라는 말은 케리소’, ‘케리그마라는 단어이고 그 말뜻은 '들은 대로 그대로(더하거나 빼거나 다른 소리가 아닌)말하라' 라는 뜻이다

/ 설교는 그분께 들은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 그러나 들은게 없으면 신학을 의지해야 할수 밖에 없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

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26)

그러니 우리가 설교 때, 예언 때, 대언 때 그분 성령께 온전히, 무조건, 의존해야 한다. 아니 의존을 넘어서서 성령 그분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성령 충만한 상태가 아니면, 즉 말씀을 안 주시면 차라리 하지 말아야한다. 목회가 직업으로, 돈벌이 수단이 되지 않은 것만 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목회를, 말씀 전하는 것을 생계수단으로 삼기에

/ 말씀공부 해야 하고,

/ 설교학을 전공해야 하고,

/ 스피칭 연습해야 하고,

/ 경건 훈련해야 하고,

/ 기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고,

/ 토요일은 설교준비로 꼼짝 못한다

이렇게 목회하는 것은 차라리 저주다

 

*사역자는 먹고 살기위해 목회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하나님의 왕자는, 자녀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사역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일 조차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인 왕인 당신이 지금 먹고 살기위해 일하고 있다면, 오~ 안 된다


성령께 나아가서 무슨 문제인가를 물어라.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의 놀라운 능력과 그로인한 하나님의 임재가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하고, 삶이 되어야 하고, 일상이 되어야 한다. 성령 충만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 주님과 친밀한 동행함의 여정이 양들을 먹일 꼴이 되는 것이다.

그 친밀함 가운데 주신 메시지들은 그분의 양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분께 받은 대로, 들은 대로 양들에게 전하면 된다.

따로 설교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따로 설교 준비를 하신 적이 없다.

늘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셨다. 우리도

그 예수님이신 성령님과 하나가 되면 된다.


사역자는 먼저 기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인 하나님의

/ 주권을,

/ 통치를,

/ 섭리를 확실히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설교 준비를 한다는 것이 결국 그분의 동행함 가운데 주어진 것이 아닌, 준비해야 하는 어떤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성령의 말씀을 대신할 설교 문을 준비하는 것이며, 그 때와 그 상황에 맞게 말씀하실 성령을 의식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설교를 준비하지 마라. 단에 섰는데 할 말이 없으면 그냥 내려오는 한이 있어도 준비하지 마라. 당신은 어떤가

그 부분에서 진정 자유 한가?


당신을 툭 치면 당신의 몸에서 십자가의 보혈이 스믈 스믈 흘러나와 

보혈이 당신의 몸에서 뚝, 뚝 떨어지는가?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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