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대언

계시의 깊이

바나바스 2017. 6. 29. 02:42

계시의 깊이

 

/ 계시의 수준,

/ 비밀의 단계,

/ 계시의 단계,

/ 비밀의 수준이 있다.

/ 미혹의 단계와

/ 혼미의 수준이 있듯이

지식이든, 지혜든, 계시든, 깨달음이든, 신앙이든, 믿음이든 건너 뛸 순 없다.


우리가 볼 땐 불규칙한 것 같지만 사실은 순서에 맞게 정확하게 와서 우리 앞에 선다.

그분의 은혜의 커리큘럼으로... 그분의 계시가 부어지면 물리적으로 우리의 머리가 차는 것

(두뇌의 캐퍼 capacity더 많은 것은 넘침)을 느끼며,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게 만약 한꺼번에 

부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질그릇은, 바가지는 그 피 펌프는 깨지고 부서지고 터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한다. 헌 부대에 담으면 터져서 새 술도 버리게 된다.

성령은 죽고 부활한 새로운 피조물에 담길 수 있지 그렇지 않은 거듭나지 않은 혼 육에 담기게 되면 그 혼 육이 불에 타 버린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도 준비 안 된 더러운 그릇에 담기게 되면 그 그릇이 타 버린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2:22)

 

우리가 말씀을 잘 믿고 순종할 수 없음은 우리의 귀와 눈에 수건이 가려 있으면 자연히 들리고 보고 하는 것이 정확 하지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의 눈과 귀가 교만이라는 죄의 수건으로 가려져 있다고 말씀하셨다. 마음까지 덮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구약을 읽을 때, 즉 성경을 공부할 때, 특히 신학을 공부할 때 덮어진다고 말씀 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고후3:14~16)

/ 그러나 그분의 십자가로 돌아가면, 거듭나면 수건이 벗어진다고 하셨다.

계시는 우리가 그분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래서 그분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분의 거룩의 능력이, 그분을 깨닫는 계시로 저절로 자동적으로 부어지게 된다. 그분 옆에 있게 되었을 때 그분과 우리의 목적이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의 원함과 원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작동되는 부수적 진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분께, 예수님께 가까이가면 우리를 가리고 있는 속임과 미혹과 혼미의 베일(악한 속이고 가리는 영)이 자동으로 엷어지거나 벗겨지고 역시 자동적으로 깨달음의 영 즉 계시의 영이 부어진다. 그러기 위해선 그 전부터 베이스가 깔려온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묵상에 대해 얘기한다면 더 깊은 묵상, 더 다양한 묵상, 둘 다 필요하지만 자칫하면 내가 만든 하나님, 나의 상상과 느낌의 카테고리에 갇힌 하나님을 만들기 쉽상이다. 내가 만든 하나님은 나아가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신 하나님과 다르기도 하다.


그분은 우리의 사고의 좁은 틀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을 장님 코끼리 보듯 그 장님처럼 처해있는 사람의 관점(경험 되어진)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와 닿는다. 삶의 여정 특히 어린 시절의 상처나 아픔의 경험은 하나님을 인지하는데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아버지를 통해 인지 받은 하나님은 귀신의 종류가 많듯이 엉터리로 다양하게 왜곡되이 인지되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려면,

/ 공부해서도,

/ 연구해서도,

/ 깊은 묵상을 하여도 심지어

/ 그분을 경험한다고 해서도 알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 머리로 지식으로 공부해서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은 오직

\ 가슴으로

\ 무릎으로

\ 그분과 함께 시간을 가지므로,

\ 친밀함의 관계와 교제로 알아가야 한다.

잘못된 큐티 운동, 말씀기도(마음에 드는, 자기 삶에 맞는 구절 뽑기 게임?)는 결국 자기가 하나님을 

자기에게 맞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가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중에도 축복 하시지만...

 

진정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께만 계시 받을 수 있다.

~ 성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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