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예배·선교

선교의 본질

바나바스 2017. 6. 29. 04:31

선교의 본질

 

퍼주는 선교

선교의 본질은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고, 물질을 주는데 있다.

/ 복음(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서 세상으로부터 자유하게 하고 해방 시켜주는데 있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나누고,

/ 그들의 삶에 필요를 채워주는 데에 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가난한 자는

/ 영이 가난한자와

/ 육이 가난한자 두 종류로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 육간이 같이 가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물지만 영 육간에 부요하거나...

 

선교 최고의 나라 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선교사들은 대부분의 선교 대상자들이 감사하게도

영적으로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복음이 필요한 가난한 자들이며,

육적으로도 삶의 필요가 물리적으로 채워져야 하는 배고프고 가난한 자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두 영역의 필요를 함께, 동시에, 같이 채워줘야 한다. 어느 한쪽도 소홀하거나

등한시 하거나 아니면 어느 한쪽만 치중하거나 편향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 너희의 기준으로 측량도 말며,

/ 너희의 기준을 강요하거나,

/ 너희의 목적을 고취시키려 하지 마라. 그들을

너희 기준으로 \ 평가, \ 판단, \ 비판, \ 정죄 하지 마라신다.


물질을 주기만 한다면,

/ 늘 받으려고만 하고,

/ 늘 받기만을 기다리는 타성을 주게 된다고,

/ 늘 그렇게 주기만 하면 안 된다고,

/ 그들의 가난을 해결 할 수 없다고,

/ 그래서 줄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편협한 우리의 기준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럼 안주면 그들에게 뭐 토산품이라도 선물 받으려 하는가? 우리가 익히 알지만 그들의 영, 육간의 가난은 우리의 기준과 방법과 그에 기준한 선교사역의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 복음으로만,

/ 성령의 역사로서만,

/ 그분의 사랑으로서만,

해결되고 채워질 수 있다. 우리는 다만 그들이 회복되는 일에 사용되어지는 그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단순한 통로인 우리가 어떤 자의적이고 자기 해석적인 필터를 그 통로 앞에다 붙인다면, 그 흐름은 본의 아니게 그 통로의 자기 제한으로 인해 역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령께서 제한 받는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선교사들이 받는 후원금이 우리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심지어 우리가 선교가 아닌 다른 곳에 지출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후원자들에게 감동으로 부어지고, 그들의 헌금 후원의 결단을 독려하셔서 송금하게 하신다. 만약 우리의 선교사역을 후원자들이 우리가 선교 대상자들을 우리의 기준으로 바라보듯 그들의 기준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면, 후원금은 그들의 기준에 미달 하기에 당연히 줄거나 끊기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5:39)

/ (선교 대상자)가 너를 속이면 속임을 당하라.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5:40)

/ 어거지로 대들면 그것을 받아 들여라. 핍박과 우겨쌈을 당하라.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5:41)

/ 속임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채 하고 속아주어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5:42)

/ 조건을 따지지 말고 주라. 그것으로 인해 빚어질 내일을 생각지 마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3,44)

/ 그래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받기만을 원하는 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지금 굶고 있으며, 헐벗고 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그들을 당신 옆에 두셨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은 우리를 속이면서까지 우리에게서 뭔가를 받으려 하는 몹쓸^^ 인간이 되어간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저주의 삶을 살아 꼭 원수와 같이 산다 해도, 그래서 그 싸가지 없는 귀신의 하수인들 같이 행해 우리의 실질적인 원수가 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선교 대상자 들이며, 병들고 죄인이다. 그 죄인들이 여전히 속고있고 가난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니 그렇다고만 하고 말 것인가?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2:25)

/ 돈을 주라. 꾸어주라 그리고 잊어라.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금을 하고, 그 헌금과 같이 우리의 사랑과 열정을 주님께 올려 드렸는데, 아니 우리의 그분에 대한 사랑을 헌금으로 고백 했는데, 그것을 반환 받기를 원하는가? 돈이 정말 하나도 없는가? 그럼 꾸어줄 수 없고, 그냥 줄 수는 더더욱 없지 않는가? 주님께서 다 아시지만...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23:22)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25:3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15:7)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15:8)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3:12)

/ 우리 주님은 가난한 자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주라고... 그러면 그들은 결국 예수님의 이름으로 삶을 영위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분이 우리 옆에 가난한 자를 남겨 두심은 가난한 그들과 우리의 뭔가를 고치려 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분의 자녀로 아버지인 당신의 긍휼과 자비를 나타내는가 안 하는가 달아보시는 것이며, 믿음과 순종의 포인트가 되며, 받는 자들에게 혹 복음과 같이 전달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결국은 그분의 은혜로 깨닫게 된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5:20,21)

그분의 뜻이 선한 것인데 그것을 우리들의 소위 지혜와 명철(좋아 보이는)로 판단해서 그것을 악이라 한다면, , 육간에 가난한자를 우리 옆에 두시며, 복음을, 음식을 주라 라고 말씀 하시는데, 복음만 준다면, 음식만 준다면 그 복음이 그 음식이 결코 그들의 삶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뱀처럼 지혜롭게 해야 한다는 것은

/ 언제 섬김이,

/ 언제 복음이,

/ 언제 음식이,

/ 언제 돈이 그들에게 그분의 정확한 시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임할 것인지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잘 분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기준으로

그들은 가난의 씨를 뿌렸으니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가난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주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안하고 받기만 하려 한다는

우리의 눈으로 판단하고, 주지 않는다면, 소위 복음만 전한다면,

그래서 그들의 가난을 배고픔을 외면한다면,

과연 그것이 그분의 방법이고 그분의 선교인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6:38)

나의 이 부분에 관해 주신 계시는 무수히 많은

/ 잘못된 실수와

/ 불순종과

/ 불감함에도 불구하고

끌어 당기셔서 그분의 은혜에 장중에 들게 하심은 그들의 회복과 치유와 영혼의 재건축을 이 무익한 종으로 하여금 목도하게 하신 것이다. 마지못해, 겨우, 눈꼽 만큼, 억지로 순종했을 뿐

인데... ~

 

우리는

/ 주러왔다,

/ 속으려 왔다,

/ 뺏기러 왔다,

/ 당하려고 왔다,

\ 나의 뭔가를 지키고,

\ 나의 기준을 고집하고,

\ 나의 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절대 안 변하는 그들은,

그래서 많은 선교사들이 고개를 흔드는 그들은,

엄청난 어둠의 저주로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자들 같은 그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단순히 공급할 때,

성령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역사 하신다.

나는 그분의 구원의 능력의 크심을 알고, 또한 믿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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