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와 위로

복종의 문화 (공경과 권위)

바나바스 2018. 1. 10. 09:14


공경과 권위에 바탕을 둔 복종의 문화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6:6~11)

/ 이것을 믿는 믿음이 

/ 자기십자가(병든 자아의 처형)이며 이후 자아의 올라옴을 부인하는 것이 

/ 자기부인(그것은 내가 아냐~ (죄=사탄)야~!)이다.

 

*세례와 더불어 당신은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간다. 그리고 면류관을 쓰고 그 사형장을 다시 나오게 된다. 그 면류관이란 바로 '그 죽으심을 본받는 것' 이다.

 

죄에겐 그것이 죄라고,

사탄에 대해서는 너는 멸망 당했다고,

★당신자신에 대해서는 너는 이미 죽은 자라고 선포하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서 산자로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죄의 세력을 꺽기 위해 단 한번 죽으셨지만(영 단번의 제사 - once off forever sacrifice) 

지금은 하나님과 영원히 당신안에 살아계신다.

 

요일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당신의 주가 왕 되심과 같이 당신도 세상에서 왕이다.

예수님이 다시오실 왕이신 것처럼 당신도 세상에서 왕이다.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라고 현재형 표현을 썼다. 예수님은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 받는 종 이 아니시다. 그분은 '다시 오실 왕' 이다 당신은 이 땅에서 왕 되신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자들이다.

구원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과거 옛사람이 완전히 죽었고,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현재의 당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 앞에 처음 나올 때는 당신 자신을 죄인으로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겸손(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당신이 이런 죄인의 존재라고 계속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하신 십자가 사역을 부인하는 것(잘못된 성화 교리)이다.


 그것은 더 이상 겸손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과 같이 살 수 있도록 당신에게 주신

부활의 권세를 약화 시키는 행동일 뿐이다.

/ 성령의 내주하심을,

/ 십자가 능력을,

/ 예수님의 피에 물 타기 하고,

/ 복음의 능력을 희석시키는 사탄교리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①처음에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②지금은 의인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로 당신을 부르실 때 그분은 결코 당신의 작고 보잘 것 없음을 보시거, 그것을 

당신에게 상기 시키시지 않는다.  반면 당신으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하시기 위해

너는 강한 용사다,

너는 열방의 아버지다,

너야말로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자다라는 엄청난 찬사를 보내신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과는 달리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문화는 스스로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그 결과 당신이 대적

/ 마귀보다 더 작은 존재로 여겨져서

/ 진정한 정체성이나

/ 진정한 권위를 잃어 버린 채

/ 마귀에게 일방적으로 공격받도록 방치되었다

◁당신은, 우리는, 교회는

\ 마귀의 놀이터,

\ 마귀의 장난감,

\ 마귀의 운동장으로

이리 메침 당하고, 저리 휘둘림 당하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을 붙잡아야 한다.

 

/ 자녀 됨의 권세,

/ 지도자 됨의 권세,

/ 묶고 푸는 권세,

/ 밟고 다스리는 권세,

/ 내어 쫓는 권세가 있다누구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당신의 문제는 당신의 대적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당신 자신이 얼마나 작은 자라는 것에 있었다. 당신이 어떤 문제 앞에서 얼마나 크게 낙담하는 가를 보면 당신의 정체성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당신의 정체성의 크기는 당신의 낙담의 크기와 반비례한다.

/ 당신은 지금 어떤 문제로 얼마나 낙담하고 있는가?

 

*당신의 존재

1.예수님이 죽으실 만큼 가치가 있고,

2.성령이 거하실 만큼 가치가 있고,

3.성령이 사용하실 만큼 가치가 있고,

4.성령이 사용하셔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  또 

5.당신은 하나님 아버지의

    / 기쁨이고,

    / 영광이고,

    / 기업이고,

6.예수님의 상급이다.

7.성령의 보좌이다.

 

*거짓 겸손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만연해 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도 그분은 그런 얘기를 듣고 싶지 않으신다.

당신 안에 어떤 좋은

/ 예수님의 가치,

/ 그분의 영광,

/ 그분의 기업과 은사 등의 가치 있는것을 생각하는 것 조차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는 말씀이 부담되어서,

\ 교만이 부추김을 당해서,

/ 칭찬을 받을 때 애써 그것을 부정하려고 한다

/ 이런 마음의 자세가 우리를 죽이는 것이다.

/ 기드온이 경험한 일종의 억압의 영이다.

 

6:3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이것은 결코 교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사람의 담대함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의 정체성, 아들, 왕자, 더 이상 죄인이 아닌 그분의 권세를 가진 사람,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목적, 이유를 아는 사람에게만 나오는 자신감 바로 그것이다.

 

*당신이 그분으로 인하여 자신감으로 살아드려 위대하게 될 때 당신의 존재가 그분께 영광이 된다.

사단은 '겸손의 교리' 를 들고서 당신의 자신감을 뭉게 버리며 하나님의 사람들을 마비 시킨다.

이 거짓 교리가 가르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자신감 자체를 교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믿음의 시스템이 결국 이런 말을 하도록 만든다.

/ 그건 제가 아니예요.

/ 바로 주님이세요.

/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그분(성령)과 함께 일하도록 권세를 위임하셨다.

그분은 당신이 그분과 함께 다스리도록 당신을 부르셨다. 단순히 순종하는 로봇복종하는 유닛이 아니라, 동역자(동역자는 의견을 제의 할 수도 있다)로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안에 내주하신 

/ 예수님이 Order 주시고

/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 예수님이 능력 주셔서 이룬 것이다.

 

당신은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함께 다스리는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예수님의 직임 (권세와 능력, 권능과 권위)을 위임 받았다. 그분은 당신의 일에 함께하시고, 능력 주셔서 선악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바른 선택을 하게 하시고, 늘 승리 하도록 인도 하신다.

 

*소위 '노야다 예언' 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겁먹은 어린아이들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사단의 엉터리 거짓말들은

얼마나 교회가 연약하며,

얼마나 세상이 어두우며,

하나님이 교회에게 얼마나 화가 나 있으신가? 등이다.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분의 구원의

사랑의 능력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교회는 속아서는 안 된다.

 

*사실 그분의 능력으로 인하여 교회는

/ 연약하지,

/ 세상같이 어둡지,

/ 하나님은 화나지 않으신다.

\ 연약해 보이지만 그분이 세우실 것이며,

\ 어두운 것 같지만 그분이 밝히셔서 구원하실 것이며,

\ 화나 계신 것 같지만 안타까우실 뿐이다.

 

*기도는 겸손의 한 행동이다. 기도야 말로

하나님의 도움의 필요성을 깨닫는 사람이며,

창조주와의 교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기도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교만의 극치이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 아버지의 필요성을 아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공경과 권위에 바탕을 둔 복종의 문화' 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전체의 내용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다. 성경의

/ 베이스이며,

/ 마인드이며,

/ 컨셉이다.

 

*마귀는 자신이 앞으로 다가올 세계적인 부흥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세대 간(가정안의 부모와 자식간에 살인까지)의 분열을 통해 이 땅을 저주하려고 몸부림 친다는 것

이다.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4: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성경이 의도적으로 부모를, 늙은 사람을 더 공경 하라고 더 많이 말씀 하고 계신다. 8번 씩

이나.

딤전5: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부모공경은 약속이 있는 계명으로 그 생명과 복에 대해서 구약에 2, 신약에 6번 언급하시고 말씀하셨다

부모의 권위에 대한 공경과 복종은 아주

/ 기초이자,

/ 기본이자,

/ 모든 것이다.

/ 신앙의 첫 단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공경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가치인

1.하나님의 형상을 공경하는 것이며,

1.하나님의 자녀를 공경하는 것이며,

3.왕자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4.예수님이 대속하실 만한 그 만큼의 그 영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통치가 당신 안에 임할 때 자연적으로 공경의 행동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공경할 때, 이는 그들이 공경 할 만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 왕국의 공경 받는 시민(천사의 눈으로 본다 해도, 저 사람들이 왕자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맞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왕의 부르심안에 거할 때, 당신의 행동은 일시적 환경에(그 사람의 상태, 상황공사 중, 성화)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조성되어 있는 영원한 환경인 왕의 자녀천국시민이기에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공경함으로 대할 때, 비록 그들이 당신의 공경을 거부한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당신 안에 있는 분명한 기준(하늘나라에서 부여한 가치들)을 그들에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단지 사람들이 공경할 만하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공경 받을 천국시민이기 때문에 다른 존재도 그가 사람이기에, 천국시민이기에 서로 공경하는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공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다. 분명.


*다른 사람을 공경한다는 것이 반드시 당신이 그 사람과 동의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영혼들이기에 그것을 가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역지 두두자 이이들 : 사람이기에 다만 그들을 가치 있는 존재로...)

 

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비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 하는 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 하느니라


*미가엘은 그의 대적 마귀와 싸울 때 조차도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았다. 마귀의 존재도 그분께서 허락하심 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나님니라와 통치를 아는 부분 중 하나이다.

/ 마귀도 그분의 통치 안에 있다이 원리로 당신은 당신의 대적을(그것이 육적이든 영적이든)대해야 한다.

 

*공경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그분에 대한 사랑이 행동과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 공경이라고 하는 눈을 통해서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기준(모두가 귀하다)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지도자를 따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지도자를 따르지 않았을 때 초래될지도 모르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따르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자에 대한 공경심과 그 권위에 대한 인정으로 말미암아 따르게 되는 경우이다. 공경심이 사라질 때 죽음의, 지옥의 문이 열린다.

 

*지도력의 남용에서 비롯된 두려움에 대한 반대로 조직을 바꾼 것에 나는 반대한다이스라엘 장로들은 그들 앞에서 악행을 일삼았던 엘리의 아들들에 관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었다. 사무엘도 죽기직전 그의 두 아들을 사사로 임명하려 했다사무엘의 두 아들 역시 문제가 있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미 그런 사태를 과거에 경험 했었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목도한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악한 지도자가 그들을 지배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사대신 그들 위에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