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와 위로

침례탕의 의미 (정체성)

바나바스 2018. 1. 9. 22:02


침례탕, 예언적 행위

 

*대가없이 용서받은 자유함 속에 살아가는 것이 당신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지 않는가?

일만 달란트 빚을 당신은 어떻게 갚았는가?  그 빚을 당신이 어떤 대가 없이 탕감 받았다는 사실, 즉 용서 받았다는 것은 왕이 우리에게 마치 전에 죄를 지은 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내가 죄인이었었어

/ 나는 죄 지은 적이 없는디

/ 기억이 안난다구~ 

/ 죄가 무엇인지 조차 몰러~ 라고 하는 믿음으로 까지 나아가야 한다.

당신은 경건의 노력조차 복음에 대한 믿음없음 일수 있다는것을 아는가?


⇨ 당신은 실제로 왕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성령을 통해서 행하신, 행하실 일이 충분하다는 것을 

믿어야만 했다. 복음은 완벽하다. 완전하다.

⇨ 당신의 수치심은 주님의 속죄 사역을 부인하고 있었다. 당신의 낙담은 너무나 충분하기 그지없는 

왕의 약속을 져 버리고 있었다.

복음은 당신에게 너무나 충분하다'거룩을 향한 경건의 노력' 조차 복음이 당신에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성화교리는 잘 못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하신 약속은 충분하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행하신 일은 충분하다.

성령은 당신에게 너무 충분하다.

⇨ 당신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이미 행하신

1.죄를 죽이고, 태우고, 씻으시는,

2.아들됨의 정체성을 주지 시키시는,

3.거룩한자로 이미 만드신 일,

4.성령께서 의롭게, 거룩하게 하실 분이기에

이미 그렇게 되어진 것을 믿음으로 받는 것만으로 당신에겐 충분하다.

 

*당신의 수치심(정죄감, 죄책감)과 당신의 낙담은 그분의 행하신

복음,

십자가,

성령의 내주 역사에 문제가 있고 충분치 않다는 것을 대변한다. 

 

*왕의 약속은 충분하다. 그러니 나의 낙담과 수치감으로 그분의 약속과 나를 위해 행 하신 것(십자가)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절대 없다.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나의 정신적, 감정적, 영적 순간이 그저 내가 최선~

/ 성령님께 온전한 의뢰

/ 충분한 의지

/ 선택권을 드림

/ 항복

~을 다하고 난 다음에 자기반성(좀 더 잘 할수 있었는데...)에 빠지지 않을 때(내가 한게 아니야 성령께서 하신 것이야)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자기반성' 이란 내 꿈을 이루기 위한 통과 의식을 갖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한 것이라 생각하면 결과에 따라서 자기반성이나 정죄감이 따라오지만 

⇨★성령께서 하신 것이라 생각하면, 아니 믿으면 그럴 필요가 없지 않는가?

 

*예언사역(설교, 선포)의 진수는 영혼을 세우는 격려의 말이다. 예언적 선포는 그 예언적 운명

속으로 들어가도록 은혜가 풀어진다사랑은 성령이 작동하는 뇌관인 것처럼 (성령은 사랑으로 작동)

선포는 하나님의 은혜가 폭발하는

/ 도화선이다.

/ 작동하는 힘이다.

/ 격발장치다.

/ 발화장치다.

/ 뇌관이다.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시는 것과 다르게 당신 자신에 대하여 생각 할 능력이 전혀 

없다. 아니 생각 할 필요가 없다.

1.그분이 당신이 아름답다고 하셨다면 당신은 아름다운 것이다.

2.그분이 당신이 의롭다고 하시면 당신은 의로운 것이다.

2.그분이 당신의 죄가 죽었다고 하시면, 당신은 죄에 대해 죽은 것이다.

3.그분이 당신이 새로운 피조물 이라시면, 당신은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다.

4.그분이 당신이 새것이라면 당신은 새것인것이다.

5.그분이 당신이 거룩하다시면 당신은 거룩한 것이다.

6.그분이 당신의 피가 예수님(하나님)의 DNA로 바뀌었다면 당신의 피는 예수의 피이다.

못 믿겠는가?


/ 시몬 베드로,

/ 사울 바울,

/ 사래 사라,

/ 아브람 아브라함,

/ 야곱 이스라엘

그리고 당신은 세상(사탄)에 의해 주어졌던 많은 거짓 이름들을 모두 깨트려야만 한다.

 

야곱은 그의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남을 속이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바로 그의 이름 자체가 속이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새 이름 '이스라엘' 은 '하나님의 왕자' 란 의미이다. 그 이름이 야곱을 해방시켜서 그의 예언적 운명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야곱아 너는 이스라엘이 될 지어다~!"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나면 당신의 삶과 행동이 변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제나 당신이 이해하고 믿는 당신의 정체성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 나는 의인이다.

/ 나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 나는 왕자다.

/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 나는 선교사다.

/ 나는 하나님의 동역자다.

/ 나는 예수님의 신부다.

라고 알고, 믿으면 당신은 왕자처럼, 하나님의 아들처럼, 예수님의 신부처럼 행동한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이르면 "내가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의 질문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대학으로 보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배우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대하기를 그들이 충분히 배우고 나면, 배운 그것이 아이들의 정체성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해 줄거라 생각한다그러나 안타깝게도 (unfortunately) 정체성은 교육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냥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인한 계시로 주어지는 것이다.

/ 자녀됨의 정체성은 누가 주는가?  당근 아부지다^^

 

*당신은 당신아이들을 가르쳐서, 교육으로 정체성을 갖게 할 수는 없다. 가장 정확한 정체성, 하늘 아버지께서 그분이 특별히 당신을 위하여 지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직접 혹은 지정한 사람을(특히 부모)통해 말씀하여 주신다.

내가 누구인가? 의 정확한 정체성은 하늘로 부터 부모를 통한 계시로 온다.

왕 같은 제사장의 정체성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기쁨과 부르심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 사람들은 대학공부 또는 사회생활 또는 일로 정체성을 찾는다. 그러나

/ 공부를 많이 해도,

/ 공부를 하고 또 해도,

/ 졸업을 하고 또 하고,

/ 또 하고, 또 해도

언제까지나 아직도 잘 모른다. 오히려 그 공부가 정체성을 찾는데 혼란만 가져올 뿐이다.

 

더 많은 교육이 말 해줄 꺼라 생각하고 내버려 둔다. 그러다 평생을 잘못된, 잘 모르는 상태로 살아간다

그것은 결국 속아서(학사, 석사, 박사라는 학위를 숭배하며 사는 사람들은 원수에게 삶을 노략질 당한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로 속임에서 겨우 눈을 뜬다 하더라도, 뒤늦게 다 살고 난 뒤, 다 늙어서 정체성을 찾더라도 이미 늦었고 그것이 삶의 실제가 되기 어렵다.  상급과 처소 그리고 면류관이 빈약하거나 없다.

 

*당신은

/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 죄를 짓고야 마는,

/ 전문 죄 직업인 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십자가 복음)를 영접하고 나서는 '성도' 가 되었다. 성도란 거룩한 믿는 자(holy believers)이다.

나는 죄인이면서 동시에 성도가 될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

스스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님을 주님은 아십니다. 이제부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만 바라 보겠습니다이제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가르쳐 주시옵소서...주님 말씀 안에 거하겠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검이라고 하셨으니, 그 검으로 저를 더욱 철저하게 다루어 주옵소서. 내 속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것 들을 다 드러내어 주옵소서... 주님의 임재는 불과 같습니다. 임하셔서 그것들을 다 태워 주옵소서... 또한 저에게 은혜를 주사, 제가 혹 주님을 거부할 때나 무시할 때 즉시 그것을 알아차리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제게 주님의 생각과 마음을 부어주셔서 이제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이 사실이 내 삶을 주장케 하시고, 실제로 내 삶에 드러나게 하옵소서... 』

 

*여전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면서 어떻게 여전히 거룩한 자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죄인이다" 라는 문장의 의미는 당신이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자 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 자신을 죄인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신은 아직 죄인입니까?"  "예"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름 때문에 자꾸만 함정에 걸렸던 야곱처럼, 만약 당신 자신이 죄인이라고 믿는다면 성도로써 살아 갈 은혜에 접근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를 얻기 위하여 선한 일을 도모하려고 애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은 더 이상 당신의 본성이 아니다. 당신의 신분은 

/ 의인,

/ 의로운 자,

/ 하나님의 아들


그러나

\ 몸은 죄인,

\ 옛 자아는 죄인,

\ 관념은 죄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계시기에 더 이상 죄를 지을 수가 없다.

 

*당신은

성도 이며, Holy believer

그리스도인이며, christian

기름부음 받은 자이기에 anointing

성령이 내주하시는 자이다

이제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도 없지만 이제 죄를 짓는 것은 더 이상 당신의 본성이 아니다

/ 당신의 본성은 변화 되었다. 아멘.

/ 이제 실질적인 '성도' 가 된 것이다. 아멘..

/ 의로움이 이제 새로운 본성(창조원형)의 한 부분이 되었으며,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아멘...


당신은 이제 

신의 성품에 참예한자,

창조원형으로 회복된자,

본질 자체가 신성하게된자,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이다.

 

새로운 피조물이기에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다. 그것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가능하다. 

만약 여전히 자신이 죄인이라고 믿고 있다면, 당신은

/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희석하고,

/ 주님의 보혈에 물타기 하고 있는 것이다.

\ 이제 당신은 의인이 되었다.

\ 이제 당신은 하나님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 이베 당신은 성령으로 인해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살게 되었다.

 

*침례는 상징적 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언적인 행위이다.

예언적인 행위는

예언적인 선포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아

④당신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

⑤당신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산자로 여겨야 한다.

 

★당신은 십자가를 가지고 침례탕으로 들어간 다음 왕관을 쓰고

/ 왕으로,

/ 아들로,

/ 새로운 피조물로 본질이 변화 되어서 다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 당신이 죄를 짓는 것은 당신의 새로운

/ 본질과,

/ 속성과,

/ 본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2~24)

*바울은 계속해서 율법 아래에서 몸부림 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거에 율법 아래에서 싸웠던 그 

몸부림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 8장에는 그의 전쟁에서의 최후의 승리를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1)

*정죄함을 가질 수 가 없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있는

/ 생명의 성령의법이

/ 죄와 사망의 법에서

/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무언가

/ 잘못된 믿음에,

/ 잘못된 왕국에,

/ 잘못된 기초에,

/ 잘못된 정체성에 

믿음을 두고 있기에 생기는 것이다.

\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면,

\ 아버지가 없으면 두렵다.

\ 아버지 없는 이방인들을 보라.

 

*"사랑하는 당신 아버지가 Almighty 신데 무엇이 problem 인가?"

/ 당신은 그분의 자녀가 아닌가?

/ 그분의 능력이 모자라는가?

/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지 않는가?

/ 그분이 당신을 내버려 두시는가?

 

그 무언가가 잘못 알고 있고,

잘못 될 것이라고 믿을 때

원수들에게 당신의 믿음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무장 해제 시켜버린 당신의

원수들에게 다시금

힘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도 계속 죄인이라고 배워 왔다면 당신은 여전히 선을 행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몸부림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대속사역 대신, 실패 할 수밖에 없는 당신의 능력에 믿음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대속사역에 뭐가 부족한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