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비밀·원리

권세의 대가

바나바스 2017. 6. 29. 03:05

권세의 위험성, 권세의 대가

권세와 책무가 동시에 주어짐.


*아담이 타락 했을 때 수많은 무리들이 고통을 겪었다. 주님이 맡기는 권세를 가진 자들에게는 그 권세에 해당하는 만큼의 책임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그렇다. 책임감이 수반되지 않는 권세는 진정한 권세가 아니다. 책임이란 네가 잘못 된 길을 갈 때 다른 자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간' 의 허물은 그에 응당한 결과를 부른다. 권세가 있는 만큼 책임량도 있다. 권세를 맡은 만큼 책임과 의무가 맡겨진다.

 

*마찬가지로 계시를 받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오두막'의 주인공 '맥'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딸인 미시를 잃은 것인가? 누가 그렇게 꾸몄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미시의 희생으로 맥이 하나님을 진정 만나게 된 것이긴 하지만, 사건의순서를 떠나서 하나님과의 대면은, 임재와 깨달음은 딸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네가 바울이 배웠던 것을 배우지 않으면, 기름부음을 더 많이 받게 될 수록 네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 그 만큼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만일

/ 네가 매일 네 십자가를 지고

/ 네 모든 자아와 네가 갖고 있는 그 모든 것을 그 앞에 내려놓지 않으면,

/ 너의 자기십자가와 자기부인이 없으면,

/ 내가 너에게 줄 권능과 능력 때문에 너는 넘어질 것이다."


*그분의 시간이 되어 기름을 부으시려 하는데 우리가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부으시지는 않으시지 않는다. 그렇지만, 잠시 혹은 길게 넘어지겠지만 그것으로 우리 영혼이 그분을 더 찾게 된다면 그분은 허락하신다. 감사하신 주님~!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복음을 위해 하게 되는 것이라 깨닫기 전에는, 내가 더 많은 능력을 받을수록 그 만큼,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모든 자아와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지 않고,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권능과 능력을 바란다면, 또는 받는다면 바울과 같이 충돌을 만날 것이며, 넘어질 것이다. 그렇다. 큰 능력을 행하는 자에게는 커다란 위험(자신의 위대함을 바라보기 쉬운 큰 유혹 포함)이 있다. 능력이 크면 위험도 크다. 그 큰 유혹이 나의 의와 영광으로 유혹 할 것이다. 오~노~! 사탄의 인터셉션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대에게 이런 말씀을 전하셨소. `너는 똑똑히 들어라! 내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듣고 알아라. 나는 내가 세웠던 것을 허물며 내가 심었던 것을 뽑는다. 나는 온 세상에서 그런 일을 자유롭게 하는 자이다! (45:4 )

나는 모든 인간에게 생명과 복을 주는 것과 똑같이 죽음과 재앙도 내린다. 그런데 내가 네게만은 예외를 두어야 옳겠느냐? 네가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직 내가 온 세계의 주인으로서 이것 하나는 약속해 주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이 세상의 재앙에서 내가 네 목숨을 건져내 주겠다.' (45:5 )

 

*그러한 일들이 주님의 사자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주님의 마지막 세대에 교회에 그들이 전해 주어야 하는 메시지(능력이 크면 위험이 크다.)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주님의 능력 안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능력 안에서 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 능력이 주님의 메시지를 보증하지 않는다. 주님이 보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즉시, 나는 똑같은 속임수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성령은 오로지 예수님에 대해 증거 하시기 위하여 임하신다.

 

*내가 바울과 같이 현명하다면, 나는 나의 강함보다는 나의 약함 가운데 찬양 드리는 것을 배울 것이다. 하나님께로 온 어떤 능력이라도 그것이 나의 메시지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오셨다. 약함, 어려움, 고통, 질병가운데 찬양 드리는 법을 배워야한다. 그런 가운데서 찬양 드리는 것을 가지고 주님이 나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그런 가운데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능력을 행하겠지만 그 모든 능력이 다 주님이 주는 능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단이 인터셉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에 대해 증거 하지 않는 모든 메시지는 내가 생각하듯, 내가 능력을 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하나님이 보증하는 것으로 오해나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주님에 대해 증거 하지 않는데 임하는 능력은 내(성령)능력이 아닐 수 있다. 내가 강함 가운데 있을 때의 능력은 주님의 능력이 분명 아니다. 내가 약함 가운데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능력이며, 배워야 할 것이다.

 

*참 믿음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진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 내가 주님의 임재 가운데 거한다 할지라도,

/ 내가 주님을 주님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을 때라 할지라도 만일

/ 네가 주님께로부터 돌아서서 내 자신을 보게 된다면, 보는 순간 나는 여전히 넘어질 수 있다. 임재 가운데서도 나 자신을 바라보면 넘어질 수 있다. 돌아보지 마라. 자신을...

 

*그렇게 루시퍼는 타락 했었다. 그는 주님의 임재 안에 머물렀었고, 그는 주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영광을 목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위치와 능력에 자만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자신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도취된 나르시시즘, 그 아름다움이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들은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허락받고 능력 받은 주님의 많은 종들에게도 또한 일어났다. 만일 내가 그것이

/ 내 지혜,

/ 나 의 의, 또는 심지어 순수한 교리에 대한

/ 나 의 헌신 (사랑 없이 가르치려만 하는 교만)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바로 실족 하게 될 것이다.


임재와 찬양 중

/ 자신을 보기 시작하면 자기 위치와 능력에

/ 자만하게 되며 바로

/ 넘어지며,

/ 실족한다.

주님~ 어렵기만 합니까?

찬양 할 때 그분께만 집중해라 언제까지? 자신을 잃어버릴 때 까지...

 

*내 스스로의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그럴 때까지 주님은 앞으로 올 세대의 능력들을 우리에게 맡길 수 없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릴수록 주님은 내게 더 많은 능력을 주실 것이다.

/ 자신감 자신을 바라보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만족하는 것, 자신감을 버려라, 내려놓아라, 자신이 없다 하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만일 주님 안에 내 자신감을 둔다면... 자신감을 자기 자신에게 두지 말고, 능력의 주님을 내 자신감의 근원지로, 발원지로 둔다면 부름 받은 것을 행할 수 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그 빈자리에다 성령에 대한 신뢰로 채우지 않으면, 그것은 오직 불안으로 이어질 뿐 이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혹에 빠져 있다. 많은 남, 녀 선지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몇은 불안해 하여 사람들이 그들을 선지자로 사도로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였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짓 겸손이며, 또한 기만의 일종이다. 만일 원수가 그들 스스로 선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속일 수 있다면, 그는 또한 그들의 자만심을 부추김으로써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로 생각할 수 있도록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거짓 겸손은 교만을 쫓아 낼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원수에게 미끼를 내어주는 자기중심적인 또 다른 형태의 교만에 불과한 것이다. 참 겸손, 거짓 겸손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는 사랑하는가와 판단하는가에 달렸다.



'영적비밀·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의 목적  (0) 2017.06.29
기다림  (0) 2017.06.29
권세아래 있는 표 1 (복종의 표식)  (0) 2017.06.29
구원론은 '론' 이다  (0) 2017.06.29
고난의 잔 2  (0) 2017.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