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비밀·원리

기다림

바나바스 2017. 6. 29. 03:20

기다림

하나님의 단어


*이 땅에 선교로 처음 왔을 때 환경의 변화로 인한 여러가지 현상중에 시간이 주~욱 늘어지는 경험을 했다. 마치 '달리' 의 '늘어진 시계' 그림처럼, 아프리카라 열대기온이라서 그런 줄 알았더니 겨울에 만만찮은 추위에도 시간은 온도에 날씨에 관계없이 주~욱 늘어졌다.

 

*한국에서 작은 광고판촉 회사를 운영할 때 전화 하나로 주문받고, 받은 것을 전화로 공장에 주문하고, 폰뱅킹으로 송금하고, 폰뱅킹으로 입금 확인하고, 택배 이용해서 공장에서 바로 고객에게 납품시키는 일을 차 운전 하면서, 점심 먹으면서, 화장실 볼일 보면서 까지 하던 일상의 일들 이었다. 마치 나의 인생의 컨셉이 스피드인 것처럼... I love speed ~

 

*남아공... 처음엔 문화도, 정서도, 언어도 어느 것 하나 맞지 않아 답답했었다. 전화 신청하고 두 달을 기다려야 되지 않나, 인터넷이 안 되어 또 두 달, 집을 구하는 일, 짐을 찾는 일, 형편에 맞는 차를 구하는 일 등. "기다리는 일" 만 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느리게... 더 느리게 가다가 결국 정지했던 그 순간들이 지금도 자믓 생생하다.

 

*기도하고 엎드리고, 또 기도하고 엎드리고, 딱히 엎드려 복지부동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때를 감당치 못 할라쳐, 그분의 회복의 시간이 저만치 가까이 온 것 같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거의 죽음같이 느껴졌다. 아내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울 정도였다. 마주치면 내안의 두려움이 비쳐지고, 그것은 우리의 두려움이 엄청난 거절감을 가져다 줄 것 같았다. 동역자가 총 맞고 죽는 일까지... 그분의 파시는 나의 바닥은 예상외로 한참 깊었다.

 

*하나님은 '기다림' 이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좋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분은 그렇게 바쁘게 살아온 나를 당신의 시간의 고무줄 위에 눞히셨다. 그리고 쭈욱 늘리셨다. 내 몸이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기다림으로 회복되어갔다. 기다림을 배우는 커리큐럼은 내 선교 여정에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시간을 만드신 분이라 그 시간에 전혀 구애 받으심 없는, 전혀 바쁘시거나, 또 그완 반대로 어떨 땐 전혀 여유 있어 보이지 않으시는 그분, 하나님에게 그런 시간들의 흐름은 늦거나 빠르거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셨겠지만...


*그분은 내가 그런 시간들이 오히려 더 빠른 것만을, 더 정확한 것만을 늘 추구하던 나의 삶, 나의 생활 가운데 존재했던 우상중에 하나였던 견고한 진, 구원받지 못한 영역의 부분들을 만지신 것이었다. 나의 미래를 사셨던 분이기에, 지금 내가 감사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다 아시고 계셨었겠지... ~

 

*이제는 바쁘게도, 그렇다고 일부러 느긋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어짜피 시간은 그분의 것이니 그분 안에서라면 조급해 할 일도, 느긋해 할 일도 없다. 꺼꾸로 매달아도 하나님의 시계는 돌아가고, 그분의 재림의 시간인 나의 종말은 오고 있다. 저만치서... 이제 내가 이 땅에서 들림 받거나,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까지 주어진 나의 시간을 그냥 그분의 시간에 얹어 버리면 될 것 같다.

 

*바쁜 마르다는 그분의 발치에서 그분과의 깊은 사랑가운데 있었던 동생 마리아의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리아는 그분의 시간에 편승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예수님께선 한 가지라도 족하고 또한 이것을 좋은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0:42)

 

믿음이란 그분의 약속을 기다리는 능력,

기다림의 능력이라 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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