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비밀·원리

고난의 잔 2

바나바스 2017. 6. 29. 02:50

고난의 잔 2

산고의 중보


*우리는 사랑하시는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영혼을 위한 산고의 사역을 행하는 그분의 동역자 들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힘과 확신인 평강과, 용기 그리고 담대함을 불어 넣으심으로 그분을 섬기도록 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영혼을 위한 산고의 사역을 행하는 그분의 동역자임을 알았다. 진정한 영혼 산고는 육체적인 인간의 산고와 똑같이 영 안에서도 너무나 분명하다. 이 비유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어떤 부흥도, 어떠한 구원도 회복도 영혼을 위한 정신적인 산고 없이는 결코 태어나지 못한다. 모든 진정한 구원의 부흥은 반드시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고후1:5)


*모든 고난이나 희생이 다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받으시는 고난일 때 즉 ★'그리스도의 고난' 일 때 그분에게 흡족하심이 있고, 그분과 가까운 우리에게 자연히 위로가 주어지는 것이다. 고난의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산고의 기도) ★'메시야 적 고난' 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심)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일이며, 고난에 비례하는 위로를 그분으로 부터 받는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24)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는 자는 축복이 없는 자?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고난의 한 형태라도 가져야(지녀야) 한다. 성도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몸소 동참하는 것이며 실제로 고통 받으며 신음하는 형제들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도가 아닌 불신자의 고난도

/ 버리지

/ 잊으시지

/ 모르는 체 하시지 아니하시는데... 더군다나 자녀인 우리의 고난이랴...


*성도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고통을 받지 않고 있는 자라면, 그는 참된 성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사는 자라면 현실 속에서 항상 그리스도의 고난에, 그리고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웃을 위해 무슨 고통을 받고 있는가?

어떤 종류의 고난으로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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