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비밀·원리

순교의 희생(아프칸 사태)

바나바스 2017. 7. 1. 00:36

순교의 희생

아프칸 사태


*예수 믿어 축복 받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서 예수 믿게 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 안 믿어도 돈 잘 벌고 잘 사는데 뭐" 라고 한다. 소위 믿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안 믿는 사람이건 사람 겉모습은 그렇게 보여도, 썩어 문드러진 속이야 보이지 않고, 와 닫지 않으니까 누가 알수 있으랴만 혹자는 "나는 신은 안 믿지만 기독교가 그렇게 잘 사는 것(소위 축복)을 추구하는 저급한 종교냐?" 라고 무시한다. 전도가 될 턱이 없다. 안 된다. 나중에 거짓말로 탄로 나게 될 뿐이다.

 

*교회는 전도의 신앙 기본 프레임 자체가 기복신앙, 번영신학에 오염되어 있다. 성령님이 직접 만지시는 환란과 핍박과 충격으로 인해 그들의 철학과 상식 그리고 내부 통념의 시스템이 붕괴 될 때에 라야지만 그들은 기독교를 다시 보게 된다. 콜로세움에서 사자 밥이 되어 죽어갔던 기독교인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 안에 있는 뭔가를 믿기 시작했다. 죽음을 초월했던 그들을 보고 "그들에게는 뭔가가 있어..." 라고...

뭔가가 무엇이겠는가?

 

*선교사가 목숨을 걸때, 희생을 할 때 복음과 예수님의 사랑이 전파된다. 그분은 지금도 희생의 피를 요구하신다. 만약 선교지에 내전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선교사가 돌아가지 않고 현지에 남을 때, 목숨을 바칠 때,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할 때 현지인들이 깨어진다. 우리는 내전이나 내란이 나면 빠져 나오기 바쁘다. 내가 선교하는 지역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나도 그 자리를 즉시 떠날 것이지만...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순교의 피를 그 땅에 쏟기를 원하신다. 그런 놀라운 순교의 기회를 줬는데도 선교가 그분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닌지 도망쳐 나온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많이 순교들 하지만 한국인 선교사는 별로다. 선교 대상자들이 가진 죄와 저주 속에 같이 들어가서 동일시 회개와 중보로 그 민족의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다가 순교를 하는 것이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선교지 흑인들의 거민과 조상의 죄와 그들을 휘두르고 있는 정사와 권세 속에 그들이 받은 저주 속에 같이 속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들의 영적 제사장이기에 그들의 죄를 가지고 예수의 피를 뿌리고 지성소로 들어가 나의 죄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다. 도둑맞고, 사기당하고, 우겨쌈 당하고, 멸시당하고 무시당했다. 그렇다 그런 그들의 저주 속에 속함을 허락하신 주님은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나를 그 가운데 던져 넣으셨다.

 

*나라가 못 사는 아프리카나 오지라고 해서, 또 배우지 못해서 무지하다고 해서 그들은 멍청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잔 머리를 잘 굴리고 속이는 데에 명수인 아이큐가 600이나 되는 사탄이 조종하기에 어떤 때는 그 교활함과 간교함에 혀를 내 둘린다. 그런 선교대상자들은 선교사에게 들러붙어 믿는 척하며 다가온다. 그러나 받고나면 그전과 똑같이 행동한다. 죽어도 안 변한다. ㅋ~

 

*사실 선교사가 먼저 변해야(순교와 희생 할 각오)하고, 희생해야 한다. 선교사가 희생하면 그 희생한 만큼 생명이 있다. 선교사가 분명 희생 안 했기에 그들은 분명 안변한다. 물론 복음은 능력이기에 바른 복음을 전한다면 변하겠지만 복음전파와 말씀의 가르침만으로 그들은 회복되지 않는다. 선교사의 복음을 위한 희생이 지불되어야 한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희생하기를 원치 않으면 가끔 그분은 우리와 그분과 선교지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의 희생을 강요 하시는것 처럼 보이고, 실질적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반 강제적인 희생들을 치르곤 한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해병대 자원입대 하려 줄을 섰다. "국가가 위험에 빠졌으니 해병대 가야 한다. 내가 지켜야 한다." 라고 그러나 샘물교회의 아프칸 배형규목사, 심성민형제 순교사건 후 한국의 교회 청년들은 "가지 말라고 한 곳에 왜 갔냐" 고 쓸데없는 선교욕심이 부른 파행이라고 하며 선교를 봉사로 이름을 바꾸고 몸을 움추렸다.


*위의 예처럼 많은 청년들이 나도 아프칸에 가겠다고, 정부에서 말려도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복음위해, 주님위해 한 목숨 바치겠다고, 가겠다고 자원하는 새벽이슬 같은 군대가 일어 났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많은 다른 안 믿는 청년들은 "정말 목숨 바칠 일인가" 라며 복음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보고, 우리를 보고 '개독교' 라고 하는 욕을 할 수밖에 없었고, 교회는 들을 수 밖에 없었다. ~ 주님.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보는 시각이 존경심과 두려움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해야 하는데도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얕은 밑천을 들어냈다. '성령 무()' 진리를 믿는다는 우리가 진리에 목숨 걸지 않으려 한다. 비 진리를 믿는 모슬렘(이슬람 지하드, 聖戰)은 지금 목숨을 걸고, 폭탄을 안고 비 진리의 칼을 들고 오고 있는데... 


아프칸사태 후 기독교인들이 아프칸 선교를 가겠다고, 그래도 가야 한다고, 구름떼 같이 일어났다면 우리가 믿는 이 복음이 이렇듯 연약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오 복음의 능력이여..


*지금 아프칸엔 한국 선교사가 거의 없다. 다 외국인 선교사 들이고 그들은 종종 순교의 피를 흘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한다. 그분은 아프칸의 영혼을 구원 하시려 동무 종들과 형제들의 순교의피의 양을 재고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6:11)


*하나님께서 아프칸에 많은 순교의 피를 원하시는데우리는 죽음이 두려워 덜덜 떤다그분은 순교의 피를 받으실 계획이었는데주님은 우리 교회에 순교자의 산실의 영광을 주시려 하는데우리가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물론 우리의 원함은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지만 장작 주님의 뜻은 더 중요했다. (*순교의 피의 작동원리 참조)

 

"주님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지어다." 라고 기도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더 많은 순교의 피를 취하셨던지 또는 더 짧은 고통의 시간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물론 긴 시간 동안에 샘물교회와 교회와 바깥의 모든 영혼들심지어는 개독교라 침을 튀기는 자를 포함하여 모두의 마음과 믿음과 행위를 기록하셨다.


*기도모임에서 한 자매가 음성을 들었는데 "살아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자 기도 인도 그룹이 이상하게 반응했고그 응답으로 기도모임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을 제외시키신 것인지도 모른다살아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막으신 셈이다.


*그 얘길 성도들에게 하면 "아니 죽지않고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가 나올 수 밖에 없지~ 그래서 그렇게 기도 했는데 뭐가 잘못이냐" 고... 투덜댄다.  그렇게 밖에 못 가르친 지도자들이 원망스럽다. 하나님에게 그렇게 투덜대며 얘기해 보시지 그래... 우리는, 교회는, 한국 교회는 한심 할 정도로 아버지를 모른다... 쩝... "살아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했다. 


*그렇다. 전도와 선교가 힘들고 어렵고 안 되는 이유는

/ 복음 탓도 아니고,

/ 하나님 탓도 아니고,

/ 환경 탓도 아니고,

/ 개독교 라고 공격하는 불신자들 때문도 아니다

'우리' 때문이다. 바로 '나' 때문이다. 선교를 가려면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 한다. 그만큼 희생을 결단해야한다. 그래서 선교를 못 나가겠다면...

차라리 나가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