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예배·선교

사도사역 - 초대교회 3

바나바스 2017. 7. 1. 00:10

사도사역 ⇨ 초대교회 3

 

*베드로는 교육을 받지 못한 어부에 불과 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권세를 가지고

/ 담대히 그냥 주님을 외쳤다.

/ 그는 어떤 신학을 공부했거나,

/ 어떤 자격의 안수를 받았거나,

/ 그의 믿음은 어떤 조직에 헌신 하였거나,

/ 어떤 가르침을 배워서 나온 것이 아니다.

★단지 그는 예수님을 알았을 뿐 이다.

 

*참 진리는 

/ 조직 신학안에 갇혀있지 않는다. 

/ 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 구원을 받기 위해 복잡한 것이 필요 없다. 

★단지 예수면 된다.

/ 구원에 복잡한 신학이 필요치 않다.

/ 구원을 이루는데에도 성령만이 필요하다.

/ 구원의 성령을 신학이 네다바이(대체)했다.

 

*마지막 세대에 교회에는 하나님의 많은 표징들이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 안에 계심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분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지 못한 것들 즉

/ 직접 치유하시고,

/ 귀신을 쫓으시고,

/ 회복시키시고,

/ 변화시키시고,

/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예수님이 아닌, 예수님 당사자가 아닌

/ 다른 목회자나,

/ 다른 신학자나,

/ 다른 철학자나,

/ 다른 인문학자나,

/ 다른 지식인에게

의지하여 해석받고, 양들을 가르치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되게 만들 것이다.

/ 우리는 다른것에 아닌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받아야 하고, 가르쳐야만 한다.

 

/ 신학을 공부한 목사에게도,

/ 신학을 연구한 신학자에게도,

/ 어떤 세상학문으로 부터도,

/ 상담가나 철학자나 지식인에게도,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 


말씀과 성령에 의한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받아야한다.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받아야한다.

★예수의 영이신,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의 가르침만을 받아야한다.

 

*교회에서 성도들 한 영혼, 한 영혼이 소중하다. 그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와 비전이 서로 합하여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각자가 갖고 있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들을 서로 모아서 하나가 되게 한 그 결정체가 교회여야 한다. 각 사람안에 내주하신 성령은 한 분이시니 그분은 하나님괴 친밀한 각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 가신다. 그러니 개 교회(무형교회)가 그 성령님과 가깝고 친하게 되면, 모인 교회는 자연히 하나가 된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계시를 받을 때 그 계시의 실현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지으려고(책, 교리)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가

/ 계속해서 잠잠히 듣기를 원하신다.

/ 좀 더 오래 듣기를 원하시고,

/ 좀 더 깊게 듣기를 원하신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계시를 받고 모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 

★예수님이 우리의 가슴에 가득 찰 때 까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설교, 사역)을 시작하면 안된다.

 

*교회의 메시지는

교회 자체의 부흥에 관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교회의 권위와 힘을 키우기 위해 선포 되어서도 안 된다.

★오직 예수님과 그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의 능력만이 선포 되어져야 한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이상한 메시지로 자신의 교회

를 확장시키거나 선전 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왕이신 예수님만 간증하는데 집중하였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시다 라는 구원의 메시지만 전해서는 예수님의 위대한 위임을 달성할 수 가 없다. ★예수님이 나의 삶의

/ 온전한 주관자,

/ 온전한 주재자,

/ 온전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

초대교인들의 삶은 매일 매일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 그들의 삶의 최대 목표였다. 

예수님이 그들의 삶의 모든 것이었다.

 

*당신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용감하며, 확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 시키고 있다고 믿는가?  당신은 말보다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강력이 당신의 삶을 통해 그 

성령이 나타내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단지

/ 당신의 설득인가?

/ 당신의 설명인가?

/ 당신의 변론인가?


/ 당신의 말보다 그 말의 선포가, 

/ 당신의 말보다 당신의 경건과 거룩이, 

/ 당신의 말보다 당신의 성령의 열매가, 

/ 당신의 말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 당신의 말보다 성령의 강력(만지심)이 되어야 한다.

 

/ 회심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거듭났는가?

/ 혹시 생각의 영역만 거듭나지는 않았는가?

/ 마음으로 믿지 않고 생각으로 믿지 않는가?

/ 삶이 진정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

/ 삶에 주인인 예수님이 살아가시는 삶인가?


\ 당신이 속해있는 교단과,

\ 당신이 신봉하는 교리와,

\ 당신이 인정하는 지도자들 보다

★성령에 의하여만 인도 받고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먼저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부활을 만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십자가 위에서 우리 자신의 죽음이 없이 부활의 은혜와 축복만 강조 한다면 우리의 복음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물질을 받고 누리는 것을 축복이라며,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하지 않은 축복은 영원한 삶을 약속 받을 수 없다. 아니 저주가 될 런지도 모른다.

 

*먼저 죽어야 부활로 거듭난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 부활은 있을 수가 없다. 거듭나야 성령께서 내주 역사 하신다. 죄 문제가 십자가에서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묵은 포도주, 낡은 부대이다. 거기에 성령께서 내주하시지 않는다. 내주 하실 수가 없다.

/ 죽음을 통과하지 않은 부활,

/ 성령이 내주하시지 않는 새 피조물,

/ 생명의 부활은 성령의 내주는 없다.

당신은 죽었는가?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수건을 벗은 얼굴로 볼 것이라고 했다. 수건은 육체를 의미 하기에 우리의 육체가 죽어야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실제로 죽으면 그분을 뵙겠지만 이땅에서도 자기가

/ 십자가에서 죽어야,

/ 수건을 벗어야, (예수님만이 벗기실수 있다. - 회개로)

/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계셔야

/ 성령이 나의 주인 행세를 하셔야 그분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는 그들의 삶의 현장인 각 가정에서 돌아가며 만났다. 그들은 제도에 갇혀 있지 않았고 제도를 만들어 갔다. 교회가 그들의 삶을 제한하지 않았고, 그들의 삶이 교회를 만들어 갔다. 그들은 어떤 규칙이나 규범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을, 그분의 삶 만을 따랐다.

 

*인간이 하나님(성령)의 거하시는 장소가 되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부르시는 긍극적인 목적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속을 거처삼으시고 걸으신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우며 놀라운 일이다. 

정말로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우리와 함께 지내시고, 우리가 가는곳에 함께 다니신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 신나는 일이다. 만약 교회가 하나님 안에 거하여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교회에 나타나지 않겠는가?

 

*만약 우리가 진정한 사도사역을 하기 원한다면 먼저 우리의 지혜와 지식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우리를 그의 형상으로 새롭게 만들 때 까지 기다려야한다. 우리는 이 기본적인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기 전 까지 다른 방법은 중단하고 기다려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나를 통해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구해야 하고, 예수님께서 그의 사람들 가운데 나를 통해 나타나시는 모습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한다.

 

*예수님은 그분을 사모함이 있는 곳에 거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이 “왕중의 왕” 이라는 이해가 없이는 예수님의 완전한 계시를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교회의 조직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마음에 하나님의 심장과 마음을 소유한 사람을 통하여 그분의 교회를 세우신다. 그분의 나라는 기구나 조직에 있지 않고, 성령의 역사하심 즉 하나님의 기름부음에만 있다.

 

*사도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이 땅에 지으려면 먼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형성 되어야 하고 ,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마음과 생각에 온전히 충만해야 한다. 특히 사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생각과 마음에 충만 해야한다.

 

*만약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이 당신에게 나타나기를 소원 한다면, 당신은 신학적 교리에서 탈출하여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보아야만 한다. 당신이 진정한 사도사역을 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당신대신 죽어가는 예수를, 부활하신 예수를 당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실히 보아야 한다. 매일 보아야한다.

 

행4: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

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4: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하나님의 능력은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열심히 전할 때 교회에게 주어지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이 당신안에서 성령으로 부활하시는 것에 의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가장 위대한 사도적 기도문은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➊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1:17) 너희

➋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➌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➍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1:18)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➎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1:19)

 

*교회는 가족이지 조직이 아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살아있는 관계는 없고 조직만 있다. 진정한 사도적 사역은 교회 안에서 성도와 성도사이 또 성도와 하나님 사이의 교제를 회복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들은 교회의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성도들이 태어나게 한 것이다. 사도적 사역에는 반드시 사도적 해산의 고통이 동반되는 것이다. 해산의 고통이 없이는 사도적 사역이 태어날 수 없다. (*산고의 도고와 증보 참조)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가 아직 잡지 못하였다고 고백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차원 높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위치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인데 그분의 소명의 위치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은 매우 중요하고 값 있는 것이다. ⇨ 그것을 기쁘게 여기라 하셨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 하도다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초대교회는 그들의 신앙고백이나 프로그램 위에 세워지지 않았고, 살아있는 예수님과의 관계와 만남을 기초로 세워졌다. 교회는 그들이 믿고 있는 교리를 실현하는 장소가 아니고 그들의 삶의 중심에서 나타나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장소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앎으로 자라갔다. 그들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짐으로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 들어갔다. 예수님은 그들의 삶에 실제적으로 나타 나셨고, 예수님은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당신은 그 성령과 함께 초대교회를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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