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비밀·원리

나의 잔을 마시려느냐? 1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바나바스 2017. 6. 30. 01:34

나의 잔을 마시려느냐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남으로써(혼이 이 땅에 도착함으로써) 아담의 죄로 인한 저주, 즉 땅에 던져진 타락한 천사인 사단과 함께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 생득적 죄인으로 기본적인 고난을 받고있는 자들로 살고 있다.

 

*사단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고

/ 우리는 그 싸움 가운데 우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일반적인 고난이라고 한다면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이 있듯이 특별고난도 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피조 된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과 고난을 우리에게 알리시기를 원하신다. 아니 알리시는 정도가 아니라 그 대속하심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기 위해서 모든 피조물을 학습 도구로 만드셨고 또 그것을 사용

하실 것이다. 절대 낭비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특히 하나님은 당신의 생애에, 당신의 운행에 가장 선한 것이었던, 아니 그것 뿐이었던, 당신의 생애 존재 목적이었던, 자녀를 대신해서 당신이 직접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 사건을...

우리가 알고 믿고 기억하길 베리^^ 원하신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는(혈한증)고통과,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께 버림받는 엄청난 고난과 희생을 우리가 알고, 믿고, 새겨 기억 하기만을 지극히 원하신다. 그러니 그분의 그 고난의 잔이 우리에게 생명의 잔이라면, 생명의 면류관 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이라면, 그분은 얼마나 그것을 우리에게 먹이시기를, 부으시기를 원하시겠는가?

 

*지금도 그분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라고 묻고 계신다.

우리가 삶(전쟁) 가운데 받는 많은 어려움과 고통과 슬픔과 상처와 인내는 그분에겐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진대 그분은 그런 하찮은 우리의 고난 부스러기들을 하나하나 들어서 그것이 나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시고, 받으시며, 그것을 아름답다 라고까지 하시며 그 고난들을 즐거워 하기까지 하라고 하신 데에 그분의 놀라운 은혜가 있다.

 

*애매히(부당한것 같은)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하시고, 또한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4:13)

 

*우리의 인생의 여정 가운데 있는 많은 종류의 고난 중 특별히 이 복음을 전하는 일로 당하는 핍박과 고난은 그분의 특별한 은총인 '특별고난' 이라 할 수 있겠다. 특별은총을 받은 많은 순교자들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과 함께 우리를 보고 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12:1)

 

*그렇지만 우리는 타락과 죄와 불순종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총인 고난까지도 오용하고 남용했다 한가지 성경의 예를 들자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부모의 죄나 또는 자신의 죄로 인함인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 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고 하셨다. 여기에서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를 이끌어 오는 일인 것이다.

 

*날 때부터 소경인자는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들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끌기 위한 일을 목적으로 둔 하나님의 허락하심 중의 하나이시다.

 

*우리 주위에 많이 볼 수 있는 선천성 지체 부자유자나 뇌성마비 또는 다운증후군 등 많은 육체적 정신적 부자유함으로 인한 고통 받는 자들과 그 가족과 이웃을 볼 수 있다. 사실 그 질환들은 우리가 우리의 욕심으로 인해 많은 피조물들이 함께 타락했기에 모두가 그 타락으로 인한 환경과 여건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적 부조화가 육체로 나타난 질병과 고통들이다.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피조물, 창조원형의 왜곡된 변형이다. 타락의 결과물 들이다. 그것은 모두 우리의 잘못 된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왜곡 상태)은 그분의 은혜로 이미 특별한 영역(파트)에서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고 그 고난의 잔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분께서 당신의 고난에 참예하고 있다고 말씀 하신다.

 

*우리는 원치 않지만 그분은 우리가 이런 어려움의 고난의 잔을 마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이런 저런 모양,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그분의 고난에 참예하는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고난을 함께 받기를 원하신다.
고난을 받아야, 대가를 지불해야 알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이지만, 예수의 십자가는 그것의 극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엡3:6)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8:17)

 

*바울 사도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라고 말씀 하셨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그분의 구속 사역인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이 부족하기에 우리가 보태야 하고, 채워야 하는 어떤 다른 고난의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우리(교회)의 머리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몸이니, 지금 머리가 잃어버린 영혼으로 인해 안타까움에,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이 아픈데, 그분의 몸이 되는 우리의 손과 발과 다른 부분은 아무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전혀 그 쪼개지는 머리와 연관이 전혀 없는 것 처럼,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분의 몸이 아니고, 지체가 아니다. 그분의 몸과 분리된 다른 어떤 존재란 뜻이다. 그러니 진정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참예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이 거룩 이신데 거룩하지 않은 자녀와 가까이 하시고 싶어 하시다 보니까 자연히 

우리영혼에 묻은 흠과 티와 주름이 제거되고 펴질 수밖에 없고 그 허물과 죄와 더러움과 어두움이 태워지고 제하여질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이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과 연단으로 다가오고 또 만나곤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고난과 연단의 삶이 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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