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비밀·원리

유기 - 내어버려 두심

바나바스 2017. 8. 31. 12:15


유기 (遺棄 - Abandonment)

/ 그를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에 두는(있는) 일 

/ 그를 악한자의 손으로부터 보호, 분리되는 은혜의 경계 바깥에 두는 일

/ 그를 악한자에게 만져도 되는 법적 권세를 허락하는 일 

/ 그가 스스로 그 은혜의 울타리를 넘어가서 악한자의 손이 미치게되는 일 (그분의 입장)  


바로의 완악함과 완강함과 강퍅함은 바로의 선택이었는가? 하나님의 선택이셨는가?

'바로의 선택을 사용하시는 선택' 을 하신 '두 존재의 선택' 이었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을(고아원) 뿐 아니라 공부도 싫어했고, 그래서 많이 못해서 뭐 분석하고, 평가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합리적인 사고와 방법에 둔하고... 뭐 그랬다. ㅋ~

그런데 나의 손상된, 아니 연결되지 못한 뇌의 뉴런을 통한 신경망을 성령께서 회복(물리적)시켜 주셔서 

지금은 제법 분석적, 논리적, 합리적인체 까지는 할 수 있게 되었음에 주님께 감사드린다.


그런데 많은 것(일)들이 유추, 동기되어지고 결단 진행되어지는 과정에 말로는, 설명으로는, 이해로는 넘어설 수 없는 일들에 결국 봉착하게 되는 경험들을 많이 한다. 즉 믿음이 있는자의 삶과 믿음이 적은자, 또는 없는자의 삶이 다르고 그들이 만나 대화할 때 결국은 서로의 주관적, 객관적 이해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큰 비쥬얼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래도 "그래서 그렇구나" 라고 위안이 되겠지만 아주작은 견해와 직관 차이에도 결국 서로 틀린것을 발견하곤 하지만,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것이라 서로 위안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인간이 고찰한 하나님을 기본으로한 인본주의 신학과 교리, 그리고 유물론적인 

기복신앙을 가르침으로 인하여 교회들이 하나님의 입장 즉 성령과 하나되어 그분의 눈으로 그분의 관점으로 세상을, 일을 대처하고 바라보는 데에 익숙하지 않게, 아니 못하게 해 버렸다.


우리는 서로 만나서 얘기할 때 늘 우리는 자기의 사고의 틀 안에서, 한계가 있는 지식을 진리인것 처럼, 해답인것 처럼, 그것이 다 인양 얘기하는 일들이 거의다다.  물론 지금의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이런 얘기도 그중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속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예를 들어 정신병(조울증, 조현병)과 정신질환, 뇌질환은 뇌의 기능이상과 작동이상이며, 그것은 어떤 물리적 뇌의 이상과 손상의 원인에 기인했기에 외과적, 물리적 약물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견해로부터 그 증상을 진정 완화 시키는 약물치료를 꼭 해야한다. 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의 견해는 하나님의 눈으로, 영적으로 해석해야 함에도 지식적 과학적 합리적 통계적으로 파악 이해 하려다 보면 결국 영이신 하나님의 그 깊은 뜻과 계획을 알수 없다. 그러고 난 다음 시간이 많이 흘러서 "아 그래서 그렇게 인도하셨구나" 라고 깨닫게 된다.


아는 어떤 분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뇌가 삼분의 이가 손상을 입고, 반신불수 처럼 하지와 언어를 못 쓰고 있었다. 그 질환의 원인은 분명 그의 선택인 운전 부주의(음주)의 교통사고 이지만 그 진행과 결과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세신바 되는 하나님의 손에 당근 달려있고, 그것을 사랑하심으로 낭비하지 아니하시고 전능하심으로 선한것으로 바꾸시는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그 신뢰와 믿음의 눈으로 왜 못 바라보는지. 


신유기도와 혹 필요하면 축사를 하자고 하니까  "선교사님 뇌 질환입니다. 안돼요" 하는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아주 드물게 회복되는 환자도 있다는 말을 의사(하나님)한테 들었다고 한다.

대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나 하는 것일까?  우리는 천지를 만드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기나 한 것인가?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며 뭐라고 하시겠는가?


직접 악한영과 대적하고, 씨름하고, 우리의 원함과 원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우리삶에 죄를통해 영향과 공격을 하고, 그것이 현실이고 실제이기에 그분의 구원의 능력을 늘 의지하고 그분의 눈으로 보는 나의 관점과는 아니 믿음과는 너무 멀리들 있는것을 자주 경험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후딱 고쳐 주시지 않고 보고만 계시는가?

유기는, 내어버려 두심은 저주인가 은혜인가? 분명 심판이지만 그것 조차도 은혜의 보좌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유익보다는 우리의 선택과 유익을 앞에 두시고, 지켜보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오해 하면 안된다. 그분은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사탄의 선택도 허락하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유기도 축복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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