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비밀·원리

나의 잔을 마시려느냐? 2 고난의 잔

바나바스 2017. 7. 15. 02:39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상속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바울선생은 현재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 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것에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도 제외되지 않는다.

 

*고난에 동참하는 일, 고난을 받는 일을 막을 수 있는, 끊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그 어떤것도 끊을 수 없듯이 역시 그 어떤 것도 없다. 그것은 결국 그분께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이기에, 이끄시는 은혜이시기에 그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며, 그분은 우리를 축복하시길 원하시기에 그런 고난을 최대한 많이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8:3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8:32)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8:33)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8:34)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8:38)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9)

 

*그렇다 하더라도 천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적이 없다. 

단지 고난이라는 우리가 만든 단어로서만 우리 삶에 존재 할 뿐이다.

 

1.그리스도를 영접(회심)하기전의 생활은 사탄에게 속아 가려진 삶을 사는 것이며, 그런 삶이 속고 있는 삶이란 것 자체를 본인도 모르고 살아 왔으니, 그것은 고난이 아닌 것(예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니까)이며,

 

2.그리스도를 영접(중생)후에는 깨달음의 은혜로 인하여 속임에서 놓이고 자유하게 되는 그분이 주신 평안함으로 인한 고난인것 같은 안 고난의 시간이며,

 

3.그분이 주시는 고난의 잔을 마신 후에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하여 고난이 고난으로 느껴지지 않는, 남들이 보기엔 엄청난 고난과 핍박으로 보이지만 그 당사자는 실제로 그 고통을 못 느끼는 상태 즉 형통의 단계에 거하게 되니까 그것 또한 고난이 아닌 것이다.

 

*그분은 고난을 주셔서 우리를 당신을 본받고 닮은 거룩한 자녀로 성숙 시키시지만 결코 그 고난이 고난으로 자녀들에게 내려지기를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복잡한 애증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감당케 하시며, 감당한 우리에게 잘했다 칭찬 하시며, 우리에게 공을 돌리신다.

 

*늘 두려워 말라 무서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시며 모든 시험(고난)을 이길 힘과 감당할 믿음을 주시고 또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지 아니하시고 그런 시험은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시며 

그런 우리를 보시고

/ 네가 잘 감당 했구나

/ 네가 나를 선택 했구나

/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자야 라고 까지 칭찬하시며, 행위책에 기록하시며, 우리를 그분의 자리까지 올리시며 인도 하시는 그분의 깊은 사랑을 계시하신다.

 

*그것은 이미 내가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 고난을 극복하고 감당하는 은혜가 그분의 사랑으로 인하여, 나에게 그 고난과 함께와 이미와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 비록 고난 속이지만 나를 그분의 평안속에 계속 머무르게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현실이고 실제라 말씀하시며, 실제로 행했음이 죄일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라도 간음하면 이미 실제로 행동 했음이나 마찬가지로 간주하시며 이미 간음하고 살인한 것이라 하신다. 여기에서 우리의 고난은 어느 부분일까? 아니면 없는 것일까?

 

*거듭나지 않아서, 성령이 안 계셔서 남을 미워하고 심지어 죽이고 싶은데 죽이지 않으려 하는 것, 간음하고 싶은데 안하고 아니 못하고 참는 것 등이 고난이라면, "이게 뭐 고난이냐" 라고 반문 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판단의 도움없이 그분께서 그것이 나의 고난을 기억하고 참예하는 것이라고 받아 주시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그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며, 그분의 기쁨이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잔이다. 이것을 나와 함께 마시겠느냐?"


*우리는 전혀 쓸모없고 성의 없는 자이지만,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잔을 내 미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잔으로 인해 더욱 정결 해져서 여전히 우리가 그분 가까이 오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만일 그분의 잔을 마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잃어버린 자들을 그분이 사랑하는 것 같이 우리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영혼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분의 고난이 있는지도, 뭔지도 모르고, 입에 대본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마셔보지 않은 것이며, 그분의 고난의 잔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도 모른다. 오~ 주님 !

 

*우리의 삶이 지금 고난과 박해를 받고 있지 않다면 우리 자신을 경계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외부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음은 곧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성령께 민감하고 신실하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세력의 공격을 겁내지 않고 공격을 받을 때 오히려 더욱 기뻐하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적의 요새에 적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적진에 떨어져 있다. 우리는 박해나 공격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박해나 고난이 없이 편안하게 사는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박해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완성시키기 위해, 그분의 거룩으로 빚으시기 위해서 악의 세력조차 사용하시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는자는 그분의 축복이 없는 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고난의 어떠한 한 형태라도 가져야(지녀야) 한다. 성도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몸소 동참하는 것이며, 실제로 고통 받으며 신음하는 형제들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고통을 받지 않고 있는 자라면, 그는 참된 성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고난이 없는자는 그리스의 사랑에서 끊어지는 자가 될 지도 모른다. 오~ 주님 !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사는 자라면 현실 속에서 항상 그리스도의 고난에, 그리고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나는 주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웃을 위해 어떤 고난과 희생과 지불하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떤 종류의 고난으로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