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비밀·원리

절대 선, 의로운 재판관

바나바스 2017. 7. 2. 03:41

의로운 재판관의 절대 선

선악과, 선택의 자율성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하늘나라의 가치관과 세상나라의 가치관은 하나님 나라에 속했는지 세상나라에 속했는지 그 사람의 가치관을 통해 반드시 드러난다. 세상의 가치인 자기 사랑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도를 실제로 따라갈 때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사단을 가리켜 세 번이나

/ 이 세상의 임금,

/ 이 세상의 신,

/ 공중의 권세 잡은 자,

/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불순종 하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 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스스로 왕이 된 사단이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사단의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대적하는 불의(unrighteous)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을 왕으로 삼는 자기의(self-righteous)로 특징지어진다. 이것을 성경에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한다. 따라서 세상나라의 가치관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현저히 차이가 난다.

 

*세상나라의 가치(세계관)는 자아실현, 자기만족, 자기사랑 등 '자아' 이며 반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그런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가 죽은 십자가를 지는(믿는), 진정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선택하는 '십자가' 이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을 구하며 땅에서부터 하늘로 바벨탑을 쌓아 가지만 하나님의 도성은 은혜로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 온 세상은 땅으로 부터,

/ 온 세상의 유혹으로 부터,

/ 온통 자신의 영광을 구하며 산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다. 갈보리엔 중립지대란 없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가려면 세상에서 나의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가치에 대해 죽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대해서 산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인 것이다.

 

주님. 나는 세상의 가치에 죽기를 원합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기를 원합니다.


인간은 세상가치, 기준, 통념, 관념, 견고한 진, 인본주의, 세속주의를 좇고 있지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로 나타나신 그 농도 그대로 한 번도 변함이 없으시다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세상에서 불러(calling) 내신다.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모임을 교회(에클레시아 - ecclesia)라고한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 뿐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에 믿음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선택할 때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합당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 실제라면, 세상나라에 의해서도 실제로 공격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에 대하여

/ 대적하고,

/ 미워하고,

/ 핍박하는 속성(attribute)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불러내심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 나라의 전쟁을 수행할 군사로 초대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십자가를 지는 자는 세상과 끊임없이 싸우는 전장 한 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승리를 누리도록 세상으로 다시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세상을 이긴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존재와 신분이 바뀐자들은 누구나 하나님 나라의 전쟁에 부름 받은 자들이며 동시에 그들만이 이 위대한 구원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용맹한 군사입니다.

나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나에게 위대한 전쟁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기에 주인이 주시는 어떠한 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위해 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예수님이시기에 나를 사랑하는 것을 멈추고 주인만을 사랑 하겠습니다

주님이 시키는 어떠한 일도 하겠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그대로 고수하면서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무든지,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자기가 죽은 십자가의 믿음 자기에게 주신 고난의 잔을 받고)를 지고 쫒아 오라고 십자가로 초대하셨다세상의 가치인 자신을 사랑하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도를 실제로 따라갈 때에 우리는 능히 예수 그리스도를 쫒을 능력을 얻게 되고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가치관은 그의 소속을 나타낸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에 반응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가 아니다. 또한 세상 가치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유행과 풍속을 쫒고 보이는 것들에 울고 웃는 자들도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나의 가치관은 어느 나라의 가치관인지, 나는 어느 나라에 속하였는지 정직하게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기도하며 나아가야 한다.


11:17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복음으로 구원)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 하여도(죄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나는 모름네다.) 함과 같도다.

 

*삶의 주인이 나 자신에서 예수님으로, 사랑의 대상이 세상에서, 나에서 예수님으로 변하는 것이 가치관의 변화이다. 수많은 교인들이 세속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가진 채로 세상 나라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 무지를 깨트리고 그들로 하나님 나라의 전쟁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만이 필요하다. 이 일은 오직 복음과 기도로만 가능하다. 영적 전쟁은 가치관의 전쟁이다. "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명확하게 선포하고, 사단의 견고한 진을 무너트리는 기도의 능력인 성령의 권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길레 먹지마라고 안 그러더냐, 먹어서 네가 선과 악을 구분하려 하느냐네가 이미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선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나와는 다르게 너에겐 없지 않느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사5:20)

/ 내가 예수님으로 악을 선으로 갚은 것처럼 너도 그렇게 할 수 없지 않느냐? 그러니 내가 선하다고 판단하는 자이니 너는 내가 악하다고 하는 것을 선하다고 하고, 내가 선하다고 하는 것을 악하다고 하지 말아 주지 않겠니.

 

*너무나 적은 거의 극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 성령의 분별의 참 은사를 갖고 있다. 이 은사가 없이는 현재 또는 과거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진실을 정확히 분별해 내기는 거의 불가능 하다.

"주님~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시는 것을 선으로, 악하다고 하시는 것을 악으로 볼 수 있는 참 분별의 은사를 주옵소서..."

 

*우리는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선한 행위인지, 악한 행위인지 알 수가 없다. 가장 악한 사람들 속에서도 선함으로 주어진 선한 동기들이 있고 가장 선하게 보이는 사람들에게서도 악한 역할로 주어진 악한 동기들이 있다. 오직 여기(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만이 그들의 행위와 동시에 그들의 동기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우리의 분별은 왜곡되는 것이 정상이다. 타락한 우리가 왜곡된 편견을 통하여 판단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무엇이든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된다악하게 보이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선한것 의롭게 되는것 우리의 성숙과 사랑)위해 일어나고, 되어 지는 일이 있고, 선 하게 보이나 그 일을 행하는 자의 영광과 이익을 위해(은혜에서 유기 결과적으로는 타락)허락 되어지는 악한 일도 있다. 심지어 자기가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보이기 위해 하나님 또는 예수님을 도, 오용 하면서 악한 동기, 즉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데 사용하는 일도 있다.

/ 자기의 의를 위해 하나님의 의를 도용? ~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강력한 거짓말(미혹)중의 하나이다가치 없고 보잘 것 없는 당신을 위해 그분이 십자가에 오르셨단 말인가?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고통과 죽음을 긍극적인 악으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못 할 존재로, 기껏해야 근본적으로 신뢰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의 근본적 결함은 하나님을 선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고하나님에 대한 숨은 원망이다. 수단과 결과, 개인적인 삶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선함에 덮여 있다는 것과 하나님은 선하신 분임을 깨닫는다면(은혜로 믿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 전부를 수용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신뢰하고 누릴수는 있다.

 

*선하다는 것은 모두에게 선한 것(절대 선 하나님)인데 내가 보기엔, 내게 그것이 악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일 뿐이다. 상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시각이고 발상이다. 절대선 또는 절대 악 그 논리적 근거를 떠난 것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결정할 이들이 수십억 명이나 된다는 건 더 더욱 혼란스러운 일이다. 당신의 선악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선악의 선택과 충돌하고 얽히고 섥혀서 결국 싸움과 논쟁이 되고, 전쟁까지 일어난다.

 

*절대적인 선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판단의 기초를 잃게 된다. 그 절대적인 선이 존재하고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 그 절대 선은 말씀이다.

/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다.

/ 예수님이 육신이 되신 내안의 성령이시다.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 대부분을 소비해 가면서 재정적인 안정이나 건강, 은퇴 등 당신 스스로 선 이라고 규정한 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해 왔다는 사실을 인생 늦게야 깨닫게 된다 또 스스로 악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엄청난 정력를 쏫아 부어가며 투덜 거렸다.


자의적으로 선악을 구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흉내를 내는 사술이고, 점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말라. 그분에겐 우상숭배가 된다. 당신은 자신의 조건에 따라 선과 악을 구별 하려는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악이란 선의 부재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빛의 부재를 묘사할 때 어두움이라는 말을 쓰거나 생명이 부재할 때 죽음이라는 말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악과 어두움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선과 빛의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예수님은 빛이시고 선하시다. 예수님은 사랑이고 어두움이 없다. 예수님이 존재하듯 빛과 선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당신은 자동으로 어둠으로 빠져들게 된다. 당신이 독립을 선언하면 결국은 악과 어두움에 이를 뿐이다.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당신 자신만 의지해야 하니까.


*당신이 생명이신 예수님에게서 분리되면 죽음이 찾아온다. 암의 발병이나 소득의 상실, 교통사고, 심지어 죽음도 선으로 당신을 찾아 올 수도 있다.

 

*그 고통 받고 상심하는 가운데서도 당신은 아름다움과 창조의 경이로운, 예술, 음악과 문화, 웃음과 사랑소리, 희망의 속삭임, 축하, 새로운 생명의 변화, 화해와 용서인 그분의 충만함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택권을 그때 주었듯이 지금도 주고 있으니까 한번 더 선택해 보아라. 지금까지 네 인생을 거의 네가 선택하고 결정해 왔지 내가 했냐?"  "그간 나는 네 잘못된 선택들을 선으로 바꾸고 축복으로 바꾸기만 했을 뿐 이란다."  "양심에 찔리는 일을 허락했을 뿐이란다."


~ 주님~!

이제 절대 선이신, 당신만을 선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