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책망

이동현 목사 (신학의 열매)

바나바스 2017. 7. 1. 02:40

이동현 목사

 

이동현 목사의 일을 접하니 크리스챤들의 비근한 우스게가 하나가 생각난다.

아무리 경건한 크리스챤이라도 운전을 하면, 교통법규를 지키기 쉽지 않고 또 운전 중에는 부정한 입술의 속성이 가차 없이 나오는 것을 제어하기가 힘든다고 하며, 싸가지 없이 운전하는 상대를 두고 "저런~ 어린양의 보혈로도 씻을 수 없는..." 이라며 웃으며 농담할 수 있다면 정말 입술에 단의 숯이라도 갖다 댄 거룩의 경지에 가깝다고나 할까? 물론 그 말은 어린양의 보혈로 씻을 수 없는 죄는 없다는 것의 강한 역 강조임을 잘 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두고 왜 "이 죄를 어린양의 보혈로 씻을 수 있을까" 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의문이 들기까지 할까?

 

물론 십자가의 보혈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혈로 나아오지 않는 염소의 가시채의 뒷 발질로 인한 심판이겠지만. 우리에게 많은 죄와 허물이 있지만 이번에 이 죄를 이용한 사탄이 좋아라 잔치 난리법석이고, 그 고귀한 피로사신 교회는 우거지 죽상이다. 엄청난 치명타를 입었다고나 할까? 뭐 교계에 영적으로 자칭, 타칭 유명한 가말리엘 같은 리더들도 해답이 없다.


고양이 목에 어떤 방울을 누가 언제 어떻게 다냐에 온통 어수선하다. 사탄이 너희들의 방울을 달고 있기나 하겠냐? 이 어리석은 목사들아~! 육적 물질적인 손해가 아니고 영적인 어퍼커트 유효 한방을 맞았기에 후유증이 오래 갈 것 같다.

 

그렇다. 뮈 사람들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의견이 분분하다.

왕을 주소서 라고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의 중얼거림으로 들린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변하기를 바랐는데 우리는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려 한다. 그래도 나름 깨어있는 분들은 우리가 다 죄인이니 그것이 한국교회의 죄이고, 거기에 속해 있는 나의 죄이니 각자의 자리에서 회개 하자고 한다. 설마 그들이 교인들보고 같이 회개 하자고 하진 않겠지만...

 

"목회자들의 성범죄 그 대처와 예방방안은?" 이라는 기사는 오래전부터 나왔었다. 불거진 것만 해도 빙산의 일각으로 낮 부끄럽고, 드러나지 않은 것이 무서울 정도다. 차라리 일반 단체, 일반교인들이 상대적으로 한참 덜하다. 왜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생명과 죽음에 관계된 엄청난 이런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해답을 얻지 못하는지, 그렇게 삶의 해답인 십자가를 얘기하는 신학과 교리를 예배하다시피 해 온 사람들이 그 신학에서 답을 얻지 못하는지... 우상이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 유명한 성경교사인 가말리엘이 베드로와 사도들의 사역에 대해 그것이 어디서 온 건지 잘 모르니 버려두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성령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성령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 한다고, 이는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우리가 깨닫게 하심이며 너희가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지 말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만 하라고 하시며,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을 모르며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한다고 하셨는데.

 

이미 가말리엘에게 엄청 배운 바울 선생님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셨었다는데,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이외에 다른 것을 더 알려고 파헤치며 기를 쓰고 몰두하는지...


그렇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을 못 배우고, 못 가르치고, 그 성령과 함께하지 못 했기 때문에 그들은 답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냥 주님의 깊은 뜻이려니 하며 애써 잊고 덮으려 하다가 또 치명타를 맞은 격이다.

 

/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로

/ 예수님을 구세주로 마음으로 믿어,

/ 의에 이르고,

/ 입으로 시인하여

/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 회개하여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 죄 사함을 받으면,

/ 성령의 선물을 받고,

/ 살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역사 하시며,

/ 착한일인 나의 성화를 이루어 나가신다고 했다.

우리는 이 복음에 대해 더 이상 얘기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귀에 딱지 앉았다. 하나님이, 복음이, 진리가 인간의 견해로 파헤쳐져 소위 지혜와 슬기 있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더 가려져서 결국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이 된 것은 아닌가?

 

/ 복음은, 진리는 간단하다.

/ 믿음은 단순한 어린아이이다.

/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복잡한 교리나 이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 그것들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신성하고 아름답다.

먼저 복음을 받고, 믿고, 십자가 복음으로 살아간다는, 아니 복음을 살 뿐만 아니라 가르친다는 권세를 받은 엄연한 목자가, 리더가 이렇게 무너지고 죄의 앞잡이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 이것이 신학의 복음이란 말인가

/ 이것이 신학이 얘기하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복음이란 말인가

/ 이것이 신학에서 가르친 복음이 분명 참 복음이 아니거나 다른 복음임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많은 목회자들의 영적 육적 간음으로 이것을 증명 해왔지 않는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6:6,7)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6:14,15)


이 엄연한 성경말씀을 그대는 왜 

/ 안 믿는가

/ 못 믿는가

/ 믿어지지 않는가

/ 아니면 어떤 누가 믿어지지 않게 방해 하는가

/ 아니면 믿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복음을 다른 사람보고 믿어라 하는가?

 

그렇게 하나님께서 너는 이제 의로운 자다. 그러니 다시는 죄가 너를 주장 못하고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는다고 말씀 하셨는데, 왜 종노릇 하고 만단 말인가?.

 

그렇다 신학은 별개로 하고 문제는 이목사의 개인 신앙이 문제였다. 그의 복음은 약했다. 그의 복음이 다른 복음이었거나, 그가 세례 받을시 회개와 용서와 믿음과 고백이 없어서, 아직 죄의 종으로 성령이 그에게 없거나, 아니면 그분의 필요에 따라 그에게 성령이 들어 가셨었는데 수, 천 번 성령을 거스르고 근심시켜서 그분의 그에 대한 오래 참으심의 시간의 한계로 그 살리는 영이 이미 떠나갔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라는 말은 목사들에게 하는 심판의 말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런 청천벽력같은 주님의 책망을 듣지않는 주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길 기도한다.

 

그렇다면 그런 악행 중에 진행해 온 사역은 무엇인가? 라이즈 업 코리아 집회 때 설파된 그 복음은 주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셔서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부서진 많은 당신의 영혼들을 복음으로 구원하시길 원했기 때문에 이목사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그를 사용 하셨고, 많은 아이들을 구원에 들게 하셨다. 또한 이미 많은 부분들이 광명의 천사의 속임과 궤계로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분은 그것을 그분의 사랑과 자비로 감추시고, 덮으시고, 절대 한계선인 그분의 시간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그는 쓰임 받았다. 그가 쓰임 받을 때는 분명 성령께서 외주 역사 하셨던지, 내주 역사 하셨던지 간에 그 역사하심이 있었다. 많은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그분은 사용하셨다.

 

그러나 그의 안에 음란과 정욕의 더러운 죄가 십자가에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이다그는 그 죄였던, 옛사람이었던 사탄의 유혹을 가롯 유다처럼 받아 들였던 것이다그에게 성령이 계셨다면 그런 유혹을 성령과 함께 극복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성령의 구원의 능력을 믿는다. 오늘 세대에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가리고 계시는 주님을 보고 있다. 그가 어느 대형교회에 제국의 왕 같은 목사처럼, 음란에 빠져 실족한 어느 목사처럼 잘 쓰임 받다가, 깨어지는 안타까운 영혼이 아니기만을 중보할 뿐이다.

 

목사건 선교사건 리더건 자칭 어느 주의 종이라고 다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는 시간이 된 것이다. 보혜사 성령이 없는 가라지와 쭉정이가 추수되는 종말의 시대가 왔다. 내안에 계신 성령께서 이런 영적전쟁에 대해서 분별력을 주시고,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려 주시기를 원하신다. 대적의 궤계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신다.

내가 그런 죄의 자리에 서지 않았음에 감사하다. 당신도 그런 자리에 서면 넘어지는 위험한 믿음을 갖고 있지는 않는가?

 

많은 소위 주의 종들이 우리는 다 죄인이니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 라고 한다.

사실 나도 돌을 못 던지는 자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을 못 던지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아직 죄인이니까 죄 지으며, 회개를 남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은혜를 남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라고 묻고 싶다. 주님께서 의인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는데 왜 그분의 칭의 를 못 믿는가? 아니 안 믿는가? 죄를 죽이신, 죽이고 계시는, 죄라고 분별을 주시고, 죄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시는 성령하나님을 왜 개 무시하는가?


신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고, 받은 대로 행동하고, 받은 대로 가르치고 있는 목사 당사자들의 삶의 열매들이 문제 있은 지가 하루 이틀이 아닌데, 왜 그 문제의 근원이 가르침을 받은 신학과 교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왜 그렇다 신학교교육에 문제가 있다. 신학교에서 잘못 가르쳤으면 잘못 가르쳤다. 잘 못 배웠으면 잘 못 배웠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

(사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6:6,7)


그는 왜 죄에게 종노릇 했는가? X현이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죄의 몸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죄의 몸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새로운 피조물로의 부활도 없다.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 한자다. 살리는 성령을 받지도 못 한자다. 수많은 교단과 교파와 이단과 삼단은, 말씀 말씀 하는 자들의 그 말씀의 자기해석의 오류와 그것이 옳다.’ 라는 교만으로 인해서 생겨난 분파나 교리차이 일 뿐이다. 거기에 주의 자녀들이 왜 그들과 같이 널을 뛰어야 하는가?

 

그의 말처럼 목사가 되어가지고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했는데, 본질을 놓친 거라고 했는데, 그에게 그 자리를 준 신학과 신학교와 교단의 목사 안수는 본질이 없는, 의미 없는 사역과 시스템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내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것은, 내가 죽었다는 것은, 이제 악한 자가 더 이상 나를 만질 수도 없다는 말이다. 이 말씀을 근거로 대적하여 죄를 다스리게 된다. 대적해서 죄를 내 쫒게 된다. 과연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나님이 신학귀신에 대해 '' 라고 심판 때에 지적하시기 이전에 이 모든 책임을 지고 신학귀신에 속은 것을 회개하고 처음 사랑과 처음행위로 돌아가라.

 

그래서 대적 원수 사탄 마귀 귀신에 의해 유혹 받아서 죄에 빠졌다고, 얘기하면 왜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그들에게 핑계를 대느냐고 따지는 자가 지가 걸려 넘어졌을 때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지면 안되" 라고 얘기 한다. 코메디도 아니고... , 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신학에서 왜 사탄과의 영적전쟁을 안 가르쳐서 이목사를 이 꼴로 만들어 놓았냔 얘기. 그 뿐만은 아니지만... 이미 많은 그런 약한 복음, 대적을 모르는 복음을 갖고 있는 목회자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으로 고국에 13만이나 된다.

 

주님의 은혜로 십자가를 통과한 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유혹에서, 악한자의 손에서 구함 받은, 구함 받고 있는 많은 주의 종들이 있겠지만...


/ 완전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복음

/ 사랑이신 예수님이 기꺼이 순종하셔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복음

/ 능력이신 성령님이 완성시키시고 마침표를 찍으신 그 복음이

신학을 공부하여 그 일만 선생의 자리에 나마 앉은 종들을 먼저 치유하고, 회복하고, 자유하게 하여 주님의 강권적인 사랑으로 영적 아비가 되어가고, 목자 장 예수님의 낮아짐과 섬김을 본받아 구원의 복음이 전해져야 했던 그 복음이...

 

진정 당신들도 살아낼 수 없었던, 살아내기 퍽이나 힘든 복음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의 쉽고 가벼운 멍에는 우리에게 뻥치신 것이었던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그렇게 신약에 골 백번 사탄과 마귀와 귀신에 대해 백 수십 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하시고, 그렇게 죄와 질병과 귀신과 구원의 엄중하고 심각한 고리를 알려 주셨는데도, 알려 하지도, 가르치려 하지도 안한 안타까운 신학이여... 

예수님을, 말씀을 도대체 믿고 순종하는 신앙인지 신학인지 교린지...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뱀의 육신을 쓰고 들어오지 안 했더라면, 그 음욕은 에덴에 존재조차 안했을 텐데, 탐욕의 가롯 유다에게 마귀가 그 예수를 팔려는 생각만 안 집어넣었더라도... 또 자살의 악한 영이 그를 멸망시키기 전에 그가 회개의 자리로 나왔더라면...

/ 이목사의 죽지 않은 음욕의 욕구를 악한자의 손인 마귀가 부추키지만 안했더라도...

/ 아니 그것은 내가 아니라고 자기부인만 했더라도, 그 음욕의 영의 그에게 미치지 못 했을 것을,

/ 이미 그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었다면,

/ 그래서 죄였던, 마귀였던 그 욕구가 십자가에서 죽은 자기십자가의 믿음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대적의 실체를 한국의 신학과 교회 앞에 전격적으로 드러내실려는 지도 모른다

배후에서 조종하고 속이고 휘두루는 사탄에게 진, 그래서 진자의 종이 된 세상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가리고 숨기기에 급급하다가 안 되니까 이런 저런 미봉책, 자구책, 해결책을 내 놓는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당연히 교회의 수치이고 그분의 수치이신 이 일에 교회가 그분 앞에 엎드릴 생각은 안하고, 성령께 물어 볼 생각은 안하고 뭔 사람의 생각인, 역시 광명의 천사인 사탄의 대책들을 그리 내 놓는 다고들 하는지... 사람의 생각은 사탄이라고 하지 않으셨나? 주님께서...

 

그 모든 죄의 배후에 꼭꼭 숨어있는 

/ 그분의 원수 우리의 대적 마귀의 등딱지를 보기나 하는지, 

/ 알기나 하는지, 

/ 알고도 모르는 체 하기 라도 했으면 그나마 알 때가 올 테니 위로가 될텐데, 

/ 이건 아예 모르는 것 같으니, 아무리 대책을 세워 봐도 해결이 될는지...

물론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는 더 주어지겠지만, 아니 그것이 그분의 목적이시겠지만, 이미 그분의 계획은 진행 되었고 끝났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복음이 주님의 심장이 아니라면 이제 진정 가르치는 자의 사역도 신학을 사용한 그분의 그 방법도 끝났다고 본다.

 

죄 사함을 받지도 않고, 회계의 세례도 없이, 거듭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보혈을 뒤집어 써 본적이 없는 자가 신학 했다고, 안수 받았다고 양들을 먹일 수가 있는가?  어디에 있는 법칙인가? 분명 주님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그랬지 신학공부하고, 성경 수십 독하고, 큐티3년이상 하고, 목사 안수 받고 등 뭔가의 커리큘럼을 거치고 양들을 먹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먹이지는 않고 가르치기만 했는지도 모르지만...


/ 주님을 사랑하는 법조차도 가르쳐 주지 않는 신학,

/ 만왕의 왕의 용감한 군사로 영적 전쟁에서 늘 승리해야 하는데, 대적이 누구인지조차 가르쳐주지 않은, 전쟁이 뭔지도 가르치지 않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가르치지 못한 신학,

/ 임마누엘 하시는 아버지 성령의 내주하심과 동행, 역사하심을 가르치지 않은 신학,

/ 이미 거룩하다 하시고, 구원과 성화를 이루시는 성령을 근심시킨 신학

/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이 믿음과 구원을 얻는길이라고 무언중에 강조하고 밀어부쳐온 신학,

/ 구원의 길은 예수님인데 신학이 구원을 보장한다고 속이고 쇠뇌 시켜온 신학귀신,

/ 주님을 사랑하던 사람을 지식과 계시만을 추구하게 만든 그분의 사랑을 가로챈 신학,

/ 주님의 심장을 전하려는 사람을 신학지식으로 자랑하게 하고, 교만하게해서 은혜를 막은 신학귀신에 대해 주님은 상처가 많으시다.

 

말씀을 연구하면서도 말씀을 믿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말씀을 가르치며, 믿어라 라고 하며 미혹의 영에 빠져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들의 궤휼이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 못해 이젠 일상으로 느껴지는 지경까지 왔다. 신학을 예배해오게 한 그 호리호리하고 딱딱한 미혹의 영을 왜 볼 수가 없다는 말인가? 복음은 신학으로는 절대 완성될 수 없고, 그분의 사랑으로만 완성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하나님은 머리로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지 않는가? 그분은 가슴으로, 심장으로, 무릎으로 알아지는 분이신 것을...

 

덧 붙이자면 신사도 운동 등 성령의 은사나 능력을 좇는 자들을 정죄하지 마라. 그들은 당신들의 잘못된 열매일 뿐이다. 이단 삼단, 판단 하지마라 그들이 이단이면 당신도 이단이다. 그들이 저쪽 도랑에 빠진 것이라면 당신은 이쪽 도랑에 빠져있는 것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사탄의 거짓능력이다. 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분의 자녀들이 거짓 능력에 빠져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든 그분은 그들의 수건을 벗기실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지 마라. 지금은 사탄의 거짓능력을 지켜보고 계시며 신령한 영적 은사에 대해 당신들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일 뿐이다. 그분은 그들이 미혹에 빠져있는 그들을 일깨우실 것이다. 그 잘못된 성령의 방향을 우리로 보게 하시고, 그들도 때가 가까와 오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은혜로 그 혼미의 영을 분별하게 될 자는 될 것이다.

 

/ 이동현 목사의 침상을 적시는 깊은 회개를

/ 한국교회와 리더 들의 뿌리 깊은 음란죄에 대한 회개를

/ 신학을 예배한 신학자들의 깊은 회개를

주님은 지금도 기다리고 계신다.

그들을 중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