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비밀·원리

신앙은 아날로그

바나바스 2017. 7. 1. 00:52

신앙은 아날로그

 

*선교하면서 핸드폰을 얼마나 많이 도둑맞았는지 나중에는 잃어버려도 부담 없는 겨우 전화만 되는 싸구려 폰을 가지고 다녔다. 얼마나 도둑들이 많은지 방과 후 성경학교 하는 중에도 없어졌으니... 팀 모임 할 때 팀 중에 누가 가져가버려 허탄함을 맛보기도 했다.  다른 것을 구해야 할 판인데 감사하게도 한인교회 어떤 분이 구형 초기모델 스마트 폰을 주셔서 사용하게 되었다.

 

*아들놈이 만지작거려 카톡인가 뭔가를 실행하더니 갑자기 여기, 저기서 "선교사님 스마트폰 세상에 입성을 축하 드립니다." "웰컴 투 카톡" 등의 인사가 날라들 온다. 뭐 선물상자 그림도 있고 사랑한다는 포즈의 개 그림도 보내주고^^ 어떻게 답변 할 줄 몰라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아마 모두들 답이 없어 섭섭해 했을 거다. 어떻게 답변하는 것을 알려면 알겠지만 그리고 쉽게 사용하게 되겠지만 뭔지 세상의 이상한 영역

에 발을 들여 놓는 것 같아 좀 꺼려지기도 했다.

 

*세째 재현이는 공부하며, 음악 들으며, 친구하고 채팅하는 이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 낸다

그 중 분명 한 두 가지는 집중을 못 할 것이라는 우려는 아빠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능력이 있다고 보이기 보다는 뭔가 하나에 확실히 집중할 수 없기에 다 건성이 되고 결국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기에 말이다. 아마 기도도 음악 들으며 하려고 할거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9:62)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6:24)

 

*제발 이것 저것 함께 믹스하지 말라고 얼마나 협박에서부터. "제발" 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부탁까지 하는데도 말을 안 듣는다. 그래서 핸드폰이 원수요. 컴퓨터가 내게 아들놈으로 인해 원수가 된 판에 나에게 

스마트폰이란 꼭 바벨론 귀신 같이 느껴져서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정도 안가고 사용하기도 꺼끄러울 뿐이었다. 핸드폰이 컴퓨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탄이 얼마나 그것을 이용해서, 그들의 목적인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뺏앗아 가려고 하는지 이제는 그들이 스마트폰 뒤에서 우리의 예배를 받고 있을 지경이다.

 

*그분의 원수이고 우리의 대적인 사단은 강제적인 힘이나 협박, 타협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는데 실패할 때, 전략을 180도 바꿔서 매우 쾌락적이고 편리함으로 사치스럽고 음욕적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 손만 뻗으면 무엇이든 잡을 수 있는 번영의 시대,

/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풍요한 삶을 즐기기 위한 웰빙 시대,

/ 언제든 육체의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는 음란물과 서적,

/ 그리고 인터넷의 화려함과 친밀함,

/ 언제 어디서나 손끝으로 터치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한 스마트폰,

/ 생각을 마비시키는 수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즉각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인터넷 시스템,

/ 문화와 스포츠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음욕,

/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아추구의 장,

/ 비정상적이고 더럽고 불결한 죄임에도 불구하고 유행과 시류에 따라 그것을 바꾸어 정상으로 주장하며 공공장소나 방송에서 떳떳이 말 할 수 있는 기준 없는 관용시대!

 

*화전, 씨름, 방패, , 갑옷, , 병거, 투구, , 칼등 성경에는 고대 전쟁에 사용하는 많은 무기들이 나온다. 그 시대가 "고대" 이기에 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21세기에 사용되어 질 무기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보시는 가운데 직접 나가서 몸으로 부딪히고 피를 흘리며 희생하는 것이 그들의 신앙이며, 믿음의 삶이며,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전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 본다. 사실 그 시대의 씨름은 한편이 죽을 때까지 한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지금의 영적 전쟁은 무릎으로 한다. 중보기도도 금식도 우리의 몸과 마음과 인내와 시간의 희생을 요구한다.

 

*손가락이 자판을 두두리기에 익숙해져 이제는 립 서비스도 구형 아날로그라며 더 진보된 '핑거 돼지털 서비스' 가 우리의 속사람이 아닌 번지르르한 겉모습 들을 통해 서로 만족하려들 한다. 아니 자족, 자만 할 뿐이다. 신앙은 디지털(머리, 지능)이 아니고 아날로그(가슴, 심장, 열정, 사랑, 무릎). 섞는 것은 그분이 원하시지 않는 이상한 향이다. 다른 향이다.


너희는 그 위에 다른(이상한)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30:9)

 

아들아~

핑거 서비스로 겉만 보이고 전하려 하지 말고 직접 만나 그분의 눈으로 바라보며 

너를 먼저 열어 그분도 열리시게 하렴~


그러나 이제 마지막 시대에는 그런 기준도 모호해지고 있다. 나는 지금 스마트 폰이 없으면 사역조차 못 할 지경이 되어 버렸다. 원수가 막판에 급피치를 올리며 사용했던 도구를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모든 기준을 엎으시고 개입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래도 그분과의 대화는 스마트 폰으로는 못하고 무릎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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