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책망

목회가 생계수단? (목사도 예수 믿어야되?)

바나바스 2017. 6. 29. 03:47

목회가 생계수단?

 

일곱 교회의 영성을 통해서 분별하라.

 

*서머나 교회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이 원망과 불평의 원인이 되면, 그 가난은 그에게 저주가 된다.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원망과 불평 아이고 내 팔자 야~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 더 주님께 겸손하게(본의든 본의 아니든)되고,

/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 더 주님 앞에 나아가게 되고,

/ 주님께 조금이라도 가깝게 되었다면, 그 가난은 축복이 된다.

 

*그러나 부족함이 없는 물질적 정신적 부유한 삶을 살아도 그것 때문에

/ 하나님을 열심히 찾지 않고,

/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 심지어 멀어지게 된다면, 그 부유함은 저주가 된다. 그 부는 결국 악이 된다.

 

*그러나 아리마데 요셉이나 니고데모처럼 많은 부와 지위, 명예와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전혀 상관없이, 또한 그것으로 인해서

/ 예수님을 찾고,

/ 더 의지하고,

/ 더 믿고,

/ 더 바라게 된다면 그래서

/ 그분께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되었다면, 그 부가 그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가난하든, 부하든, 건강하든 아프든, 지위가 높건 낮건, 배우든 못 배우든, 어떤 것으로 인해

/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면 축복이고,

/ 주님께 멀어 진다면 그것은 저주가 될 수 있다.

저주 : 사탄이 우리 죄를 사용해서 우리를 그분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  

 

*사고가 나는 것, 잘못이나 불법으로 재판받고 감옥 가는 것, 상처 받는 것, 질병, 어떤 물건, 물질, 상황, 사건, 상태, , 사고 등의 일(그분의 퀘스쳔)로 그분을 찾게 되며, 그분을 깨닫게 되고 그분께 가까워진다면 축복이지만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저주다. 그분의 질문에 응답(반응을 보임)함으로써 그것이 축복과 

저주로 갈라지며, 결국 우리가 축복과 저주를 나의 반응과 응답을 통해서 가려서 선택 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분은 그분의 자녀를 당신에게 이끄시기를, 당신을 찾고 구하고, 당신의 도움을 구하고 받기를 원하신다. 가까이 와야지 축복을 하실 수 있다. 당연 그분은 자녀가 축복 받기를 원하신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미 저주받은 자녀도 그 저주를 어찌하시든지(자녀 몰래) 선으로 바꾸셔서 자녀를 축복하신다.

 

*어떤 이는 목회를 생계수단이나 밥벌이로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목회가 생계수단이 될 정도로, 그 사람의 믿음이 그것 밖에 안 된다면, 그만두고 직장을 갖는 게 좋다. 그것은 미안하지만 저주다. 왜냐하면 교회는 자기의 뜻이나 꿈을 실현하는 어떤 장소이거나 생계수단의 방편으로 이용되어 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자 장 되신 예수님이 한 사람의 영혼을

/ 구속하고,

/ 치유하고,

/ 회복하고,

/ 재건축하기 위한 것에 자기의 전 생애를 드리고, 한사람의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양으로 빚어내며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려고 당신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그 양을 당신 앞에 세운 것이다.

 

*목회를 경험 쌓듯, 사업하듯, 몸 값 올리는 것이나, 목회에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 논리식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있다. 잘못된 영성에 오염된 것이다. 철학의 영, 사상의 영, 이즘, 주의, 음란, 간음 등 마귀적 지정의에 오염된 영성 들이다. 저주받은 영성들이다.


어느 시골에 노 권사가 목사에게

"목사님 믿음이 없으시군요" 

"목사님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하는 웃지못 할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다.


선교지 남아공에서도

"목사도 예수 믿어야되~"

"선교사도 거듭나야되~" 라는 말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