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대언

예언의 시간성 (썩은 만나)

바나바스 2017. 7. 1. 02:00

예언의 시간성

 

*예언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받은 만나와 같다. 광야에서 하루하루를 지탱하도록 우리를 돕지만 하루이상 보관하면 곧 썩어 버린다. 예언은 만나와 같이 하루에 그때에 필요한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예언의 효력은 떨어지거나 없어진다.

 

사단(대적)의 영향을 받는 다른 사람들의 작은 선택부터, 강력한 선택으로 인해 우리에게 미리주신 그분의 계획에 의했던 예언이 즉각 변경될 수 있기에 분명히 그분이 주신 예언(주신말씀)이라 할지라도 그 선포의 시간을 놓치거나, 하루이상 보관하면 썩는 만나와 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 변경이 시간에 수천 번까지 변한다 할지라도 그분은 모든 것을 카버 하고도 남으실 분이다. 전지전능한 그분에겐 아무 문제가 또한 없으시다. 오히려 그런 대적의 선택들을 사용해서 자녀인 우리와 더 많은 시간을 가지시려는 그분의 목적도 이루신다. 우리가 매일 만나를 걷어야 하는 것처럼 매일 그분과의 교제와 친밀함의 자리인 기도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이 또한 하루, 하루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머물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다. 만나를 최소 삼시 세끼는 먹어야한다.

 

관계성은 의사소통의 양과 질에 좌우하므로, 지속적인 대화가 없는 관계는 죽은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날마다 새롭게 유지하도록 우리를 돕는 것이 예언이며, 성경말씀에 특별히 예언의 은사를 구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내가 너와 매일 만나서 얘기하고 싶구나..." 

우리는 자신의 권위의 영역 안에 거해야한다.

 

주의 영이 임하면 많은 사람들이 넘어진다. 그러나 이제 그런 때는 지났다. 주님의 영이 운행하여도 서 있을 수 있어야한다. 주의영이 운행할 때 서 있지 못하면, 주님께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교도들이 주 앞에서 넘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의 백성들은 주님이 그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굳게 서야할 것이다. 거룩함과 성결로 아버지의 영인 성령과 부딪힘이 없어야한다.

 

성령이 내주하시고, 나와 친밀한데 임하시는 성령이 내려온다고 넘어 진다는 것은, 내주의 영과 임하시는 영 사이에 육과 혼의 필터가 막혀있는 것이다나의 성령체험은 어떤 마약보다도 더 놀라운 것이어서 도저히 성령 안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결과였으며, 나는 더 보아야 했다.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면서 예수님의 생명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흐르게 되는지를 알기 원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도록 성령 안에 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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