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저도 깨달은게 있는데 한마디 해도 될런지요.
깨달음을 눈으로 보실 수 없다면 그것은 '공허'(空虛) 그 자체 입니다.
깨달음은 마음으로만 깨닫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몸으로 느낄 수 있는것이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제가 깨달은 깨달음이란...
어떤 영, 즉 신(靈,神 - 상위 차원)이
어떤 사람 즉 구도하려는 자에게
그가 구하는 영의 세계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누구든 득도하지 않으면 그 영역의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즉 그 영을 추구(득도 - 예배 – 숭배)하지 않으면 깨달음은 없습니다.
그 영이 어떤 존재이든 그리고 뭐가 되었든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던지 안 들어내던지 간에
그 영은 자신의 어떤 영역을 가르쳐(깨달음 - 감동, 빙의) 줍니다.
문제는 그 깨달음의 내용이 영의 세계이기에 하위차원인 우리는
그것이 진리로 보여지고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 그 영이 속여도,
/ 그 영이 거짓말 해도,
/ 그 영이 유혹하고 미혹해도
그것이 속임인지 모르고 더 깊이 파고들려 한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그 영은 자기를 추구한 그가 이 땅에서 죽을 때 까지 조금씩, 조금씩
다른 지식(깨달음)을 줍니다.
다른 영을 따르지 말게하고 믿지도 못하게 가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영은 아이큐로 말하면 1000~600입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그 초원하는 존재를 믿지 않을 수,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영 에다가 '어떤 영' 과 '성령' 을 대입시켜 봅시다.
나는 소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자로써
성령의 감동으로 즉 빙의로 깨달음(계시 - 분별)을 받았습니다.
다른 종교, 다른 것을 추구하고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관장하는 영이 마컨(빙의)으로 그것을 소위 숭배하는 자들에게
깨달음이라는 구도(숭배)의 대가를 던집니다.
그들은
그 영의 세계에 같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즉 불교의 내용과 기독교의 내용이 그게 다르지 않습니다. 80%정도는 비슷합니다.
그래서 예수가 석가를 만났다. 석가 밑에서 공부했다.
라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문제는
두 영이 있는데
진정한 한(하나) 깨달음을
한 쪽에서는 어떻게든 주려하고
한 쪽에서는 어떻게든 다른 깨달음을 주어서
그 한 깨달음을 가리고 속여서 안 주려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숨기고 싶어했던
가리고 싶어 했던 그 깨달음은 영원한 만고불변의 진리인
"너는 영원히 죽어 마땅한 죄인이고
내(예수)가 십자가에 너 대신 죽음으로 너를 죄에서 구원 했다."
라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깨달음의 마지막입니다.
이 꺠달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경험하는
진정한 깨달음, 참 깨달음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죽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이 있기를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린도 후서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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