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변론·상담

우리가 멍충인가?

바나바스 2017. 8. 30. 12:23

모태신앙으로 살아 온 지난날들을 회상해 보면, 아름다운 신앙의 여정의 추억들이 아닌 부끄럽고 남에게 

간증조차 하기도 꺼려지는 부끄러운 종교생활을 했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교회를 다니셨고, 내가 따라 다니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 어쩔수 없이 교회 나간지가 사춘기 때 까지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 반항기가 와서 엄마의 원성을 사면서도 내 필요에 의해서 교회를 빠지기도 했고 의무적으로 다니는 교회 생활이 나의 자아를 힘들게 했었다.


초, 중때까지는 교회를 왔다갔다만 했는데 그야말로 내 삶이 이런갑다 하고 산 내 삶 그 자체였다. 그게 내겐 자연스러운 삶이였다. 고등학교때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리어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역시 종교생활이었지 거기에 어떤 만족이나 평안을 찿을 수 없었다. 교회를 나서면 믿음이나 신앙은 온데간데 없는 사람이 되어 세상의 즐거움을 찾기만 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주는 기쁨은 전혀 없었다. 


어렸을 때는 무슨 문제인지 의문조차 갖지 못하고 지났지만, 그래서 머리가 굵어 지면서 많은 질문이 생겼지만 그 질문에 답을 해 줄만한 사람도 없었으며(집에서 내가 제일 유식^^) 교회 목사님에게 질문하면 꼭 답을 못하고 내 앞에서 어쩔줄 몰라할 것 같아서 목사님을 봐서 아예 질문을 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성령이 모든 것에 해답인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지금의 나처럼 목사님이 누구에게든 질문을 하라고 했으면 좋았건만...  그때 내게 지금의 나 만큼의 그래도 신앙상담을 해 줄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의 지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분명. 


어쨋든 

교회에 갔다오면 아주작은 종교적 만족감, 아니 의무감에 성이 안차서 특별한 취미생활과 다른 일정(주로 가족과 놀이공원) 으로 오후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 오후의 무료함과 내영의 채워지지 않은 갈급함은 젊은 시절을 고민과 우울로 채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결국은 한국교회, 교회의 리더인 목회자, 목회자를 길러낸 신학이 나의 질타의 타겟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나에게 왜 

/ 복음의 능력을, 

/ 말씀의 구원의 능력을,

/ 십자가 보혈의 사랑을,  

/ 보혈의 죄사함과 용서하심의 능력을, 

/ 예수님의 쉽고 가벼운 멍에를, 

/ 성령의 내주 역사하심의 동행하심을,(*성령 사역의 실제 참조) 

/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가르치지 못했고, 배우게 하지 못했는가?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주를 믿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마땅히 세상에 대한 해답이 되어야 한다. 나는 내안의 성령께서 세상에 대한 해답을 주시기에 세상 모든것에서 자유 할수 있다고, 그래서 거기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내안에 성령의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과 신앙의 여정에서 문제가 되는 어느것이든 그것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성령께서 주시는 통찰과 분별이기에) 말할 수 있다.


나는 내눈에 어떤 들보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으며, 당신눈에 티끌이 있다는 것을 보고 그것에 대한 성령의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는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말해 줄수 있다.

우리가 고민도 생각도 없이 무뇌인간처럼, 멍충이 처럼 살아가게 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남이 아니고 예수의 피를 나눈 형제 자매끼리 못할 말은 또 무었인가?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신앙상담 010-4050-4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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