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구원

마지막 질문도 네가 선택하라.

바나바스 2018. 2. 8. 17:16


그분은 지금도 당신에게, 

나와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계신다.


/ 네가 믿음이 있느냐?

/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 네가 평안하냐?

/ 네가 나에게 가까이 오렴...

/ 네가 회개 했으면 좋겠다.(이 말은 저의 말)


왜 하나님은 당신의 귀에 "회개하라" 라는 말씀을 직접 안해 주시는지를 아는가?

다른것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회개의 자리에 나아오는 것을 

/ 강제로, 아니 

/ 반강제로, 아니 

/ 조금의 자기의로, 아니 

/ 어떤 율법이나 방법과 순서로 

나아오는 것을 그분은 결코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회개의 그분의 숨은 목적 참조)


/ 자신이 스스로(자발적) 

/ 자신이 진정 죽을 죄인이기에

/ 자신이 죄와 허물로 죽은자이기에

/ 자신이 진정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기에

/ 자신이 용서와 구원의 은총을 받아야 하기에

/ 자신이 지옥 갈 자임에 긍휼과 자비의 은혜를 하기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진심으로) 회개와 긍휼의 자리로 나아오는 것을 원하고 계심을 왜 안 믿는가? 


회개만을 외치는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는 회개를 외치다, 외치다 목이 쉬고 얼굴까지 쉬어서 보기가 안스럽고 은혜조차 안된다. 하나님이 회개를 외치라고 할 만큼, 그래서 회개가 꼭 구원의 필수 조건인 것 처럼 회개를 권유로부터 강요나 요구까지 한다면, 그들이 그 말씀에 순종해서부터 억지로, 마지못해 회개의 지리로 나아 간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가 아니지 않는가? 

(참고로 회개를 외치는 자라고 그 외치는 사람은 반드시 회개를 이룬자이고, 구원 받는자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주님은 단지 그를 통로로 이용하실 뿐일 수도 있다. - *2080 법칙의 요구는? 참조)

 

이전에는 하나님이 여러가지 다른 질문들을 던지실 시간과 기회가 많으셨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질문을 우리보고 선택하라고 하시는 싯점까지 와 버렸다.

그것이 마지막 질문이 될 만큼 심판의 시간이 가까이 왔다.

교회에서 회개를 외치든 안 외치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자와 점점 더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자는 

이미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로 구분되어 졌다.


그렇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늘 질문을 던지셨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을 통해서도 다른 사람에게 늘 질문를 하시기를 원하셨다. 

나는 게으르고 사람의 거절감을 받기를 싫어했다. 그렇게 살다가 구원의 은혜로 구원받겠지 뭐... 라고


많은, 그리고 모든 일들과 관계들과 사건들과 피조물들을 통해서 그분은 늘 질문(말씀)하셨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시기에 큰 목소리로, 더 큰 재난과 징조로 질문하실 수 밖에 없으신 것이다.

그 마지막 질문이 전쟁이나 재난으로 죽기전의 환란과 고통이 아니기를 그분도 바랐지만 이제 그분도 

그분의 시간이 다 되었기에 그 무겁고 심각한 질문을 하지 않으실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평창 북한 응원팀으로 온 북한에서 태어난 한 소녀로부터 조용기, 김삼환, 오정현 같은 목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이제 그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려 하신다. 그들에게 똑같은 내용의 단순한 질문을 하실것이다. "네가 나를 믿느냐?" 그 마지막 질문이 그들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그분에겐 상황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조용히 주님앞에 엎드릴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될런지... 마지막 질문에 구원자 예수님을 마음껏 부를 시간과 여건이 은혜로 주어질런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교회를, 조국을, 그리고 민족을 위해 기도해 보면, 기도가 안된다. 즉 선포하는데 힘이 들어가지 않고, 선포자체가 안되며, 내용도 일관성이 없다. 기도를 원하지 않으시지는 않을텐데... 기도가 안된다. 그 이유로 지금은 하나님이 교회, 특히 대형교회를 떠나셨다고 하셨다. 지금은 교회에 거짓 선지자와 거짓목사, 거짓교사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만 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교회가 조국과 민족이 중요한게 아니고 너 자신의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너의 가족의 구원이 중요하시다고 하신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중보를 해 보면,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통변을 해보면 그들에게 물으시는 것은 "네가 나를 믿느냐?" 이시다. 


그분의 말씀은 한결같으시다. 

"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네가 그걸믿느냐?" 

"믿는다는 너는 지금 어디있느냐" 이시다.


아~

지금 사람들은, 그분의 자녀들은 그분의 마지막 질문조차도 선택하려 하고있다.

당신은 전쟁의 참화 가운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선택할텐가? 기어코...

주님은 그 선택을 끝까지 기다리시다니... 


 작성중...